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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상

[시 부문 심사평]

  • 작성일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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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시 부문 심사평]



  이번 제50회 상명 학술상 시 부문에 접수된 작품은 22명의 시 132편에 달했다. 투고편수도 늘어났고, 작품 또한 매우 다양한 경향을 보여주어 인상적이었다. 몇몇 시는 발상이 참신하기도 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다양한 현재적 감정과 고민을 담아내고 있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삶과 사랑, 관계에 대한 성찰이 드러나는 시들이 많았다. 많은 시들이 진솔한 마음과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어 울림을 주었고, 시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 긍정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시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구성의 밀도가 떨어지는 시들, 다루는 대상이나 주제에 대한 시인의 고유한 직관이나 자기만의 통찰이 부족한 시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시는 자신의 안에서 끌어낸 정서와 내밀한 생각, 경험 등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친 감정의 토로, 하소연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시는 산문에 비해 짧고 압축적이기 때문에 언어적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나 관습적인 비유를 주의하고 자신만의 시적 개성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고심 끝에 「소나기」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고 「내가 겨누었던 화살 끝」을 가작으로, 「언니에게」를 입선작으로 선정했다. 

  「소나기」는 실제의 소나기를 노래한다기보다, 내면의 강렬한 격동을 ‘소나기’로 비유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작품으로 시적 깊이나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비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한 쌍의 눈동자”가 실제로 응시하는 것은 그저 잔물결일 뿐이다. 그 안에 들끓는 격랑을 바라보는 것은 시적화자의 또 다른 마음의 눈이다. 

  고요하고 무기력한 일상은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다. “먹구름이 낀 흑백의 필름”처럼 생동감을 잃어가는 삶 속에서 그리움도 아름다움도 희미해져간다. “얼굴도 잊은 사람을 그리워할 수” 없는 일이다. “멜로디만 남긴 노래의 가사는 무엇이었나”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나기”는 시적화자를 변화시킨다. 시적화자는 망각하고, 외면하며 무감각한 평화로움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폭우와 흙탕물, 거센 물결 속에 쓸려가는 쪽을 택한다. “빗물에 무감하던 그 눈동자는/ 이제 맑은 날 여우비에도 흐트러져” 버린다. 거센 소나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나서, “비가 남기는 물 자국이 깊게 패인” 후에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와도 그 이전의 삶과는 달라져 있다. “발이 땅에 닿”고, 해는 중천에 뜬 도로 위에서 문득 그는 깨닫는다. “비는 온 적이 없었다”는 것을. 모든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는 “젖은 소매가 자꾸만 손가락 끝에 스”치는 예민한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다시금 앞을 바라보고,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이 시의 “소나기”는 청춘, 방황, 열정, 상실, 내적 성장에 대한 매혹적인 비유로 읽힌다. 

  가작으로 선정한 「내가 겨누었던 화살 끝」은 짧지만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는 것처럼 소모적이고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고 파멸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상대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독 묻은 가시와 같”은 화살이 “나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음에도, “네가 겨누었던 화살”이 결국엔 “내가 나에게 겨눈 화살 끝”이었음을 깨달음에 도달하며 삶의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양쪽이 모두 원인인 동시에 결과가 되기도 하는 복잡하고 양면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시적으로 잘 담아낸 점이 값졌다. 

  입선작으로 결정한 「언니에게」는 사실 그 뒤에 이어지는 시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작품으로, 연작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중 한편을 골라 선정해야했기 때문에 단독으로도 어느 정도 완결성을 가질 수 있는 「언니에게」를 선택했다. “새벽 담은 강물에 적어둔 편지를 빨았”다는 구절 등 시적 비유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능력이 돋보이고 인간관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해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언어적 긴장과 감정의 절제, 통찰의 깊이가 조금 더 확보된다면 향후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 외에도 마지막까지 고려 대상에 있었으나 아쉽게 최종 선정되지 못한 좋은 작품으로 「떨어진 마음을 집어 올린 가난한 주문들」, 「미물」, 「겨울 마음」 이 있었음을 밝힌다. 선정된 학생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그 외 참여해준 모든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한국언어문화전공 김지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