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7 호 언론 정화인가, 언론에 물리는 재갈인가
논란 속 언론 중재법 개정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이 뜨겁다.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통칭 ‘언론중재법’은 언론사 등의 언론 보도 또는 그 매개로 인하여 침해되는 명예나 권리, 그 밖의 법익에 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이를 조정하여 중재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와 공적 책임을 조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중재 신청 대상을 포털까지 늘렸던 2009년 개정 이후 언론중재법은 12년 만에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언론개혁을 공약으로 들고나오면서 시작된 언론중재법 논의는 소위 ‘가짜 뉴스’에 대한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여당에서 법안이 발의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정안에 대한 서로의 견해차가 너무나도 크게 나면서 반대 의견에 부딪히고 있다. 개정을 추진한 여당은 가짜 뉴스 타도를 주장하며 빠른 입법을 촉구하고 있지만, 야당과 언론은 재갈 물리기라고 맞받아치는 등 서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여당이 8월 25일 새벽 4시에 단독으로 법사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본 회의만이 마지막 관문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여야당의 견해차와 좋지 않은 여론을 의식해 법 개정은 일단 브레이크를 밟으며, 26일 법안 회의 내용 합의를 계획하고 여야 8인 합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하기로 했으나 결국 합의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여당은 2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는 대신 국회 내에 언론 미디어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12월 31일까지 언론중재법 등 언론 미디어 관련 법안을 추가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찬반 나뉘는 언론 중재법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은 국민의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시작되었다. 언론에 실망한 국민은 기자를 ‘기레기’, 기더기‘라 부르고 기사의 신상을 터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불신의 원인은 허위, 불확실한 정보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클릭을 유도하고, 허위로 겉 포장이 된 기사는 유튜브 등 SNS까지 퍼져나간다.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면서 언론 정화, 개혁에 대한 공감대는 이번 법안 형성에 기반이 되었다. 더하여 6월21일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매매 사건 기사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삽화를 넣은 것이 여당 내 강성 층에 불을 붙이면서 언론 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렇다면 언론중재법이 이처럼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법안 마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법안 마련에 무리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언론중재법이 이렇듯 태풍의 눈이 된 이유는 이번 개정안에는 크게 5가지 주요 쟁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논란이 큰 손해배상 및 허위 보도에 관한 특칭은 언론사의 매출액을 반영하여 허위 보도 시 손해액의 5배 징벌적 배상을 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야당은 명예훼손, 모욕죄 등 엄연한 형법 조항이 존재함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이중규제 및 과잉처벌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여당은 손해액 현실화로 피해구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둘째로 고의· 중과실 추정은 취재 과정에서 법률위반행위 등이 있을 때 피해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만 입증하면 언론사에 고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이때 언론은 허위조작 보도를 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여당은 명백한 허위 기사만 대상이며, 추정 전 피해자 입증 책임이 선행된다고 주장했으나, 야당은 조작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고 원고의 피해 입증 책임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로 열람 차단청구권은 보도 피해를 주장할 경우 인터넷상 열람 차단을 청구한다는 내용이다. 야당은 열람 차단은 사실상의 삭제 효과로 의혹 보도를 원천 봉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여당은 인터넷상의 빠른 전파를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언론 중재를 통해 차단이 풀리므로 삭제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 밖에 기자에게 고의·중과실이 있을 때 언론사가 기사 상대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구상권 청구요청, 정정 보도 청구가 있는 경우 기사에 청구 사실 표시를 요구하는 인터넷 신문에 대한 특칙 등에서 여야가 맞부딪히고 있다. 또 ‘보복적’이나 ‘충분한 검증 절차’, ‘회복하기 어려운’ 등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도 주목하는 언론중재법
국내 인권 단체가 진정을 제기한 지 사흘 만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 만큼 국제사회도 이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OHCHR 홈페이지에 공개된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언론중재법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당국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해 자의적인 법 집행 가능성이 크며 허위, 조작 보도 규정이 모호해 자체 검열 초래가 우려되며 고의·중과실 추정 증명 책임을 언론에 떠넘긴 것, 취재원 누설을 강요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불안감이 더 커진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국제기자연맹(IFJ) 또한 “법안 내용이 허술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고 오보에 대해서도 과도한 처벌 규정이 있어 한국 기자들 사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하며 법안 폐지와 국회 본회의 부결을 촉구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J)와 세계신문협회(WAN-IFRA) 역시 성명을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공통의 세계 언론단체들은 언론중재법의 문제점을 제시하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근본이며 한국의 언론중재법이 언론에 압력을 가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외의 가짜 뉴스 규제방안과 우리나라와의 차별성
해외에서도 또한 점점 발달하는 디지털 통신기술을 통해 허위 또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봇, 가짜 계정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배포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배포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가짜 뉴스이다. 이에 따라 가짜 뉴스가 국제적 의제로 부상하고, 주요 선거를 앞둔 많은 국가가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입법조사처 ‘허위정보 해외 법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먼저 법적 규제 입법을 시도했으며 가장 강력한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소셜네트워크에서의 불법 내용물을 즉시 삭제하고 위반 시 소셜미디어 플랫폼사업자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네트워크법집행법』을 시행하고 있다. 규제대상 내용물은 가짜 뉴스에 국한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훼손, 범죄 모의, 테러·폭력 선동, 아동포르노 등이다. 실제로 이 법에 따라 유튜브에서만 6개월간 5만8천여 건의 게시물이 삭제 또는 차단됐다.
프랑스는 2017년 4월 대선 기간 가짜 뉴스가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2018년 12월 22일 『정보조작투쟁법』이 발효되었다. 이 법의 목표는 선거기간 동안 가짜 뉴스 및 허위정보 확산을 제한하는 것으로 후보자는 선거전 3개월 기간 동안 SNS상의 가짜 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판사에게 허위로 의심되는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 16개 언론사와 구글 등은 팩트 체크 기관인 ‘크로스체크’를 만들어 신고가 들어온 사안에 대해 복수의 언론사 기자가 참여해 사실관계를 따지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허위정보로 판정될 경우 ‘허위정보’란 표지를 붙이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강력한 가짜 뉴스 대응 법률인 『허위조작정보법』을 시행하고 있다. 허위조작 정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허위사실 진술이 있어야 하며, 공공이익은 안보, 공중보건, 공중 재정, 선거 및 국민 투표 결과에 대한 영향 방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감소 방지 등이 해당한다. 악의적이고 국익 및 공공이익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허위게시물에 대해 조처를 하지 않으면 기업에 최대 100만 싱가포르 달러(약8억58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유죄판결 후에도 법률 위반이 계속될 경우 일일 1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처럼 허위정보에 대한 해외의 규제는 크게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처럼 플랫폼사업자를 적극적 규제의 대상으로 강력한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과 미국처럼 규제를 최소화하며 사업자에게 면책권을 부여하고 교육을 강조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허위 또는 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며 제재대상에 인터넷 신문·방송, 유튜브 등 통신매체를 제외하는 우리나라의 언론중재법 개정안과는 달리,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에서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사례가 거의 없고 처벌대상을 허위 SNS나 인터넷 통신매체로 한정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언론특위, 사회적 용광로가 되길
지난 29일 여야는 국회에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언론개혁 및 관련 제도 전반을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언론중재법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포털의 뉴스 서비스 문제, 유튜브나 1인 미디어에 의한 가짜뉴스 문제 등을 폭넓게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단체들과 원로 언론인들도 30일 언론계나 시민사회를 포함해 그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왔던 다양한 주체들의 문제의식을 받아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지를 표했다.
제21대 국회 개원 초반(2020년)에 발의된 법안에는 ‘정정 보도를 제대로 해라’는 요구가 많았다.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비교적 적었고 야당도 이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당이 ‘정정 대상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 규정, ‘열람차단 청구권(신현영의원안, 2020년 7월31일)’에 더해 언론사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급진적으로 추진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심지어 발의된 법안 중 독립 민간기구였던 언론중재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정부 기관인 ‘언론위원회’로 변경하는 안 등 언론중재위원회의 본질적인 기능과 지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언론사와 야당의 저항은 거세졌다.
따라서 다시 논의되는 언론개정법에서는 더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크다. 언론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인 것도 그만큼 언론의 신뢰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언론이 설 자리가 없듯, 법안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 시작된 논의에서는 정당뿐 아니라 언론단체, 시민, 학계 등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어 언론특위가 사회적 용광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지현 기자, 윤정원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