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4 호 흔들리는 대한민국 징병제, 합의점을 위한 도약
여성 징병제 논란, 변화를 일으키다.
최근 여성 징병제에 관한 청와대 청원이 20만 건을 넘으며 연일 뜨거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란은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군가산점제 재도입을 위해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이 모병제 도입 및 남녀평등복무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불이 붙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올라온 청원의 내용은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병력보충에 차질이 생기는 등군 운영의 전체적인 질적 악화가 우려되어 여성도 징병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여성 징병제 논란은 젠더 갈등을 초래하며 소득없이 끝이 났지만, 이번 청원은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제기된 논란을 단순한 소모적 논란으로 치부하지 않고 군대 복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성 징병제와 더불어 모병제, 군 가산점제 등 여러 제도들이 논의되고 있다.
▲ 여성 징병제에 대한 청와대 청원 (출처: 청와대 게시판 캡처)
해외에 도입된 여성 징병제 도입, 국내에서 가능성은?
최근 화제가 된 여성 징병제란,기존의 징병제와 다르게 남성과 여성 모두 병력을 징집하는 제도를 말하며 양성 징병제라고 볼 수도 있다. 현재 여성 징병제가 도입된 국가는 군부국가, 독재국가, 내전 진행 중인 국가 등을 제외하면 이스라엘,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를 포함한 총 11개국이다. 노르웨이는 2016년 여성 징병제가 도입되었다. 노르웨이에서 군대는 좋은 일자리이며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이런 좋은 직장과 권력을 남자만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였다. 이로 인해 2016년에 여성 징병제가 도입될 때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것은 사회주의 정당 소속의 여성 당원들이었으며 여성 징병제는 여성들이 군대라는 일과 권력을 얻기 위한 좋은 방편으로 작용하였다.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남녀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부여해 성 평등을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2018년부터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또한 여성 징병제는 성 평등의 상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과 군사적 긴장이 발생했을 때, 북유럽의 영토 대비 부족한 인구수가 적은 상황에서 군 인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되었다. 이렇게 외국의 사례를 보면 여성 징병제의 도입은 성 평등을 확산할 기회가 되며 여성들의 사회적 권리 신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현재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청년층이 줄어들고 있어 군 인력 부족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모종화 병무청장은 연간 필요한 현역 인원이 20만명인데 저출산의 영향으로 2032년부터는 18만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인원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 징병제는 병력 자원을 충족시키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문제점이 많다. 여성 징병제가 실현되기 위해서 대상자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 징병제 실시에 대한 여성계의 적극적인 요구는 아직 없고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 군대 복무에 있어 긍정적인 반응을 가지고 있던 노르웨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징병으로 가는 군대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군대에 대한 인식 역시 긍정적인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형평성과 전문성의 문제가 있다. 국방대 이상목 교수는 병역 지원이 늘어난다면 모두가 입대하기는 어려워 사회복무요원 등과 같은 대체 복무를 만들어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고,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무기간을 단축하면 전문성이 약화된다며 여성 징병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 외에도 여성 징병제가 국내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점들은 많다. 군대 복무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거시적인 군사전략에 대한 논의와 함께 시설과 부대 등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와 계획은 필수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와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심지어 ‘여성 징병제가 양성평등 실현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여성 징병제 도입은 섣부른 판단이다. 국민적 합의와 문제점 해결을 위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인력 배치, 군대 인식 개선과 전문성을 상향시킬 방법 등에 대한 계획이 세워져야 국내에서 여성 징병제가 안정적으로 도입이 가능해질 것이다.
군 복무 논란의 또 다른 해결책, 군 가산점제와 모병제?
최근 사회가 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여성 징병제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징병제에 대한 문제 또한 제기되고 있다. 젊은 층이 생각하는 군대는 기성세대들이 체험한 군대와 다르며 국방의 의무에 대한 인식 역시 평등성 부분에서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대 복무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군가산점제 부활과 모병제에 대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2016년 계룡대에서 열린 장교 합동 임관식 (출처: 청와대 사진 기자단)
군 가산점제는 전역한 군인이 공직이나 공기업,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기업 채용시험에 응시할 때 필기시험 과목별 만점의 3~5%를 가산해 주었던 제도이다. 군 가산점제는 1961년 도입되었지만, 1999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실적주의에 입각한 공직 제도와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여성,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공직 취임기회를 제한하여 평등권을 위반한다.”라고 하며 위헌결정을 받았다. 결국 군 가산점제는 2001년 최종 폐지되었다. 현재 군가산점제 부활 의견이 나온 상황에서도 제도의 장단점으로 인해 찬반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군 가산점제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 중 하나는 군 가산점제 폐지가 오히려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이석연 법무법인 서울 대표 변호사는 군 가산점제 폐지 이후 국가가 적정한 보상제도를 만들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고 이는 헌법 39조 2항의 병역의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며 군가산점제 부활에 찬성하고 있다. 또한 군 가산점제는 군필들에게 적절한 보상제도이다. 현재 군 가산점제 부활론을 주장하는 김병기 의원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 군필자들을 위해 예우를 갖추고 그 봉사를 인정하는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이유를 근거로 군 가산점제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은 군 가산점제 부활에서 더 나아가 군 복무자 국가유공자 예우법안 등 군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법안들을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군 가산점제 부활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군 가산점제 같은 일률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배려가 이루어진다면 논란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대엽 대법관 후보자는 군 가산점제는 성별에 따른 즉각적인 불평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며 국방의 의무에 대한 보상이나 배려 제공 등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또한 군인에 대한 예우를 차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예우부터 고쳐야 한다. 군인에 대한 예우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예우한다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며 미필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예우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군인 처우 개선이 우선이라는 것이 반대의 입장이다. 실제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 국가들은 이러한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통해 ‘국가가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라고 느낄 수 있게 한다.
군대 복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군 가산점제와 더불어 제시되고 있는 모병제는 지원 병제 중 하나에 속하며 본인의 자유의사와 희망에 따라 국가와의 계약으로 군별, 신분별, 병과별로 지원하여 복무하는 제도로 징병제와 반대되는 제도이다. 1963년 가장 먼저 모병제로 전환한 유럽의 대표적인 모병제 국가인 영국에서 군인들이 훈련기간 동안 받는 연봉이 한화로 약 1920만원이며 병장이 받는 연봉은 한화 약 4,306만원이다. 대표적인 모병제 시행국가로 손꼽히는 미국에서는 파병 군인을 기준으로 이등병의 경우에는 연봉이 한화 약 2,000만원이며 병장은 한화 약 2600만원을 받는다. 또한 월 200달러의 식비 보조, 주택 수당, 의류 수당을 지원하며 병과에 따라 추가되는 보조 수당들까지 지급하고 제대 후 대학을 지원하면 50,000달러 이상의 학자금을 지원한다. 가까이 위치한 일본 역시 모병제 국가이며 가장 낮은 계급인 ‘2년 임기 육상 자위대 지위관 후보생’은 첫 3개월 기간동안 매달 한화로 약 165만원을 지급받고 특기교육 기간의 경우에는 월급이 한화로 약 210만원이며 정식 자대 배치 시 1년 차의 월급은 약 236만원이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의 이병은 월급이 459,100원이며 병장의 경우에는 608,500원이다.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의 군인은 확실히 우리나라 군인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군인의 처우 개선만 보고 모병제로 전환하기에는 모병제로 인한 단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 모병제 전환에 대한 찬반논란이 팽팽하다. 모병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은 군인에 대한 처우 개선 외에도 꼭 필요한 인원만 선발하기 때문에 인재활용이 효율적이며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 징병제보다 군대의 복무가 공평하다는 점,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존과 달리 군 입대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점 등의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모병제에 반대하는 입장은 모병제를 시행하면 군인 봉급이 필요하거나 병역을 대신할 납세를 하지 못하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이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오히려 공평성에 어긋나게 된다는 점, 군 모집 비용이 많이 들며 현재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숫자의 병력 수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 등의 단점을 내세우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 군 복무 논란에 신중해야..
과거에도 꾸준히 군 복무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이 제기되었으나 큰 문제라 여겨지지 않았고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과거와 달라지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형평성 및 권리 등 군 복무에 대한 문제는 큰 화제가 되었고 여러 사회 현상과 맞물리면서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키고자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제시된 방안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우리 사회는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보며 심사숙고해야 한다. 해외의 사례들과 달리 수치적으로 제도 도입이 적합한 상황이라도 세계 유일 ‘분단국가’라는 위치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군 복무에 대해서 오랫동안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방안에 대한 문제도 같이 있었던 사안이기 때문에 한순간의 민심이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거진 이슈를 마냥 억누르고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군 복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가 오가는 큰 쟁점이 된 만큼 이제는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 사회에 맞게 변화시켜야 할 때이다. 사회에 맞는 변화를 위해 우리는 군 복무에 대한 앞으로의 합의점과 행보를 기대해야 한다.
이은영 기자, 윤정원 수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