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호 먹고 살기 힘든 요즘 세상
먹고 살기 힘든 요즘 세상
201710846@sangmyung.kr 정기자 임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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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먹고 살기 힘들다.
가령 이런 것이다. 올해 6월의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의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 6% 상승했고, 이는 IMF 시기인 1998년 이래 처음 기록한 수치이다. 물론 사회 구성원들의 임금 또한 인상되었다면 정상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식할 수 있겠지만 같은 기간 공무원 임금은 1.4% 높아졌을 뿐이고, 최저임금은 그나마 5.1% 상승했다.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가난해졌고, 고로 소비력이 낮아졌다. 모교 학식의 가격이 이제는 6,000원이어서 비싸다고 느껴지지만 이마저도 학교 밖에서는 어렵게나마 맥도날드 빅맥 세트를 먹을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주식 및 금융 시장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보인다. 코스피 수치는 작년 2021년 7월 5일 3,293을 기록했지만 2022년의 같은 날에는 약 30% 낮아져 2,336이 되었다. 국내 외화보유액은 환율 방어를 위해 사용되어서 2021년 4,631억 달러에서 올해 6월에는 4,383억 달러로 감소하였지만 7월 5일 지금의 시점에서 원 달러 환율은 1,299원으로 1년 새 150원 이상 상승하였다. 그 이유는 국제적인 다발적인 위기와 인플레이션은 물론이고,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미의 금리가 1.75로 같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금리를 조정하기에는 국내 부동산 문제, 대출 문제들이 엮여서 복잡한 문제이다. 금융 당국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문제이겠다.
어렵다. 가깝게는 리먼 브라더스, 우리 사회에 상처를 준 IMF,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오일 쇼크 시대를 경험한 우리 사회이지만 일선의 담당자가 분투하는 가운데 뚜렷한 전략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0일 현 경제 상황에 대해 “이거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방도는 없습니다”라고 답변했으며 취임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날 즈음, 6월 말부터 한국갤럽, 리얼미터 등 다수의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데드크로스를 경험하고 있다. 여당은 물가 및 민생안정 특위를 결성했지만 정작 그곳에서 논의된 것은 부동산 문제나 종부세 기준 완화, 영끌족 등 ‘보편적인’ 물가 및 민생안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위기대응특위를 구성했지만 전체적인 당 차원의 내부적인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이번의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금리와 물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으로 몰리고 있지만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 지금만의 일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을 자살 문제, 88만원 세대, 노동 문제, 페미니즘 문제 등 우리 스스로가 살아가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예전에 유행했던 ‘헬조선’이 아무래도 이런 문제점들을 통칭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최근에는 잘 쓰이지 않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분명 해결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잠재하고 있다.
가령, 지난 4월에는 간호사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요지의 문화제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원래는 간호사들의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는 문제를 취재하고 도심 각지에서의 노동계의 시위 등, 노동 문제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려 할 의도였다. 그곳에서 만났던 경기도 ㅇ병원의 조 간호사님은 처음에는 간호계의 노동 환경의 문제점, 가령 인력이 부족하여 양질의 의료 서비스의 제공이 어렵거나 간호사 개개인의 화장실을 갈 시간조차 없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점차 대화의 주제가 바뀌며 요즘 육아의 어려움, 정치권에 대한 실망 등 사회 전체적인 내용으로 확장되었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2000년대 이후로 줄곧 들었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들. 이마저도 아직 주유소의 평균 기름값이 2000원을 돌파하기 이전의 일이다.
[2]
어느 날 문득 길상사에 올랐다. 맑고 향기롭게, 법정스님과 대원각의 김영한, 백석과 박헌영. 언뜻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얽힌 장소이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다름아닌 법정스님의 만년필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법정 스님께서는 만년필을 즐겨 사용하셔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에만 급급해서 자연의 섭리마저 무시한 우리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법정스님의 일화는 우리를 너무도 부끄럽게 만든다. 이 책에 따르면 한 번은 도쿄대학에 유학중이시던 스님께서 법정스님이 좋아하시는 촉이 가는 만년필을 사오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그 만년필을 고맙게 소중히 쓰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스님께서 파리에 가셨더니 그곳에 똑같은 만년필이 잔뜩 있어서 촉이 가는 만년필을 하나 더 사오셨더니 처음 가졌던 필기구에 대한 살뜰함과 고마움이 사라져 버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나중 산 것을 아는 스님께 드리고 나니 비로소 처음의 그 감정이 회복되셨다는 것이다.
삼선교의 사거리에서 북쪽 길을 따라 오르면 길상사의 일주문이 보인다. 7월의 한여름이었다. 북악의 선선한 산 공기가 반가웠다. 그 곳의 어느 한 건물에 들어서면 법정 스님의 유품이 정돈된 곳이 있다.
유리 너머로 바라본 법정 스님의 만년필은 분명 프랑스 D사의 것이었다. 칠(漆)로 마감된 긴 몸통과 특유의 긴 길이의 클립, 그리고 다소 평평하게 길게 빠진 펜촉은 분명 40여년 전 D사가 만들었던 만년필이었다. 아마 최고급의 부띠크(boutique) 매장에 전시되었을 프랑스제 만년필, 그러나 본래 법정 스님의 만년필은 독일의 몽블랑(Montblanc)에서 만든 만년필로 알려졌다. 몽블랑은 오늘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면서 값 비싼 만년필을 제작하는, 그야말로 현대 최고의 만년필 제조사이다. 그래서인지 ‘법정 스님께서 쓰시는 최고급 몽블랑 만년필’,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두고 우리 사회는 수없이 많은 곡해를 하였다. 가령 무소유를 주창하신 스님께서 ‘몽블랑 149 만년필’만큼은 소유하셨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면서 몽블랑이라는 회사의 명예를 드높이고, 더러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에 빗대어 펜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스님께서 몽블랑을 쓰셨는지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범부(凡夫)의 눈에 비친 만년필이, 그리고 그것을 즐겨 사용하신 멋쟁이 스님의 뜻이 곡해되는 것은 마음에 성치 않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그 만년필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내걸기를 주저한다. 그렇기에 당신께서 만년필을 즐겨 쓰셨고, 그 흔적이 만년필에 아름답게 남아있다는 이야기만을 이곳에 남기고 싶다.
[3]
길상사에서 나오자 다시 현실과 마주한다. 올해 초 대통령 내외의 방문으로 논란이 되었던 나폴레옹 빵집, 그곳에서 맛있어 보이는 빵을 하나 찾았지만 가격표에 차마 지갑을 꺼내지 못하고 발길을 뒤로했다. 어려움은 여전히 실존했다.
당국과 정치권은 오늘날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해야” 라거나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서는 오늘날의 중첩된 어려움들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양안 위기가 고조될 때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겠다. 어두운 시대이다. 마주한 작은 전쟁들 속에서 큰 전쟁을 우려하고 있고, 물가 상승 속에서 우리들의 실질 소비력은 낮아지고 있다. 새로이 날아오른 국산 전투기와 신형 이지스 군함이 우리를 지켜줄 수는 있겠지만 이것들은 만약의 가능성에 대비한 보험일 뿐이고, 정치-경제적인 실질의 처방이 필요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런 고민들을 잠시 접어두고선, 오랜만에 보았던 멋들어진 만년필을 떠올리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걷나들 수 있었다. 그렇게 어두운 그늘막 속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참고문헌>
부산외고 1학년 정승익(1998), [학생문예 - 산문] '산에는 꽃이피네'를 읽고, 부산일보, 1998.10.17.,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981017000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