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호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202210316@sangmyung.kr 정기자 정지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우리나라는 ‘성과사회’이다. 산업혁명 이후 확연히 달라진 우리 사회는 시대가 흐를수록 ‘빨리빨리’를 외치며 남들보다 더 많은, 더 나은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성과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 하고, 해내려 하고, 증명하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과를 향한 부담감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과사회 속에서 때때로 알 수 없는 피로감과 우울함에 빠지곤 한다. 나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괜히 무기력함에 사로잡힌다. 무언가에 대한 목적이 있을 때는 그것을 해내야만 하는 강박감에, 그 목적을 이루었을 때는 목표가 없어졌다는 허전함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단순한 예시이지만, 마치 이번 기말고사가 끝나기만 하면 기막힌 연말을 보내고 새롭게 신년 계획을 세우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낼 것만 같았던 내가 시험 후 원인 모를 권태감을 느끼며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말이다. 앞서 말했듯 성과사회 속 개인은 그 누구에게도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과정, 그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자기 스스로 부여한다. 피로와 우울, 이러한 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시대의 아주 위험한 질병이다.
이러한 성과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챙기기도 모자랄지언정,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등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를 챙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껏 내가 쓴 글만 읽어보더라도 일기를 쓰며 다짐하거나 혼자 생각에 잠길 때 마지막은 항상 ‘선한 영향력을 미쳐 사회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라는 번지르르한 말로 글을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말들은 언뜻 보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포부와 같이 그저 보여주기식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열정을 쏟아 회사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처럼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도 우리에게 사회에 기여 하는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그런 의무를 부여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갖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피로사회’에 따르면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개 ‘긍정성(肯定性)’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것, ‘부정성(否定性)’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 나의 좌우명은 ‘긍정적으로 살자.’이며 긍정의 힘을 그 누구보다 믿어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긍정성이 우울증과 연결이 되니 혼란스러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그리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이 오히려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소망과 바람을 성과사회 속 무한한 긍정으로 바라본다면 이는 금방 지쳐버리게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자신에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하는 것일까. 대체 누가 우리에게 슈퍼맨도 해내기 벅찰 것이 분명한 이런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것일까.
무언가 글을 쓰거나 발표하는 상황이 있을 때마다 이런 포부를 밝히는 나의 생활을 돌아봤다. 그저 나를 꾸미고 보여주기 위한 말인지, 선한 영향만을 미치고 싶은 사회에 대한 애정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후자였다. 그렇다고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 대한 애정은 아니다. 그저 나의 작은 힘으로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행복할 듯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더 괜찮은 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변화된 사회를 향한 기대감의 애정을 가지고 그런 말들이 쉽게 나왔던 것으로 생각한다.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으로 자신 있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가 실패하여 나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들게 될 수도 있다. 이론과 실재가 늘 같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먼 훗날 자신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없을지 당장은 알 수 없더라도 그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는 사회에 ‘소속’돼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하게 만든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희망 또한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라는 책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주인공 바틀비는 직장에서 일 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날, “I would prefer not to.”라며 자신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말을 거절한다. 심지어 자신의 주 업무인 필사 일까지 거부하고 결국 해고된다. 바틀비의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바틀비의 대사 “I would prefer not to.”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등으로 번역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같은 문장임에도 어떤 문장은 바틀비의 ‘선택’ 자체에 집중하고, 어떤 문장은 ‘Want’에 집중한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직원들이 바틀비의 말투를 따라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처음에는 바틀비를 어딘가 낯설게 보았지만 점점 그에게 빠져든 것이다. 그들은 잠시 치열한 성과사회 속에서 개인 스스로 자신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바틀비가 되어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자 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한 사람의 행동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바틀비는 모두가 맞는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사회에 전파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어려워하는 사회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용기 있어 보인다. 만약 정말 ‘피로사회’의 정의대로 긍정적 힘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부정적 힘이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면 때로는 바틀비와 같이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거절하는 것을 못 한다. 사실 나에게는 어떤 것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바틀비처럼 명확하게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제안하기까지의 용기가 혹시나 내가 거절 함으로써 상처가 되거나 무안한 감정을 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일까. 그래서인지 이런 성격 탓에 인간관계에 있어 이유 모를 오해들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바틀비가 더 대단해 보였고 많이 배웠다. 성과사회 속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품고 있다. 작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큰 목소리가 되고 이는 더 나아가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바틀비가 되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문제가 있다면 감추지 말고 꺼내어 보자.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리고, 그저 하고 싶은 게 많은 초등학생이 되어 무작정 내뱉어 보자.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그 무엇이든 전하고자 하는 바가 진심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꾸준히 내뱉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와 책임감이 생겨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바틀비처럼 용기를 가지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싶은 목적과 마음만 있다면 그 마음들이 모여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잉 긍정은 스스로를 착취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80673.html>
메인사진 _ "I would prefer not to." https://readingjournal4hurst.blogspot.com/2015/01/herman-melvilles-bartleby-scriven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