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호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뮤직비디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아이유> 中 나는 어린 시절 밥 먹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자기 직전까지도 불을 켜놓고 한 번 읽기로 정한 책은 절대 내려놓지 않는 아이였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몇 페이지이건 집중해서 한숨에 읽을 수 있는 나름의 집중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시리즈물의 전집이 있으면 무조건 1권부터 시작해 읽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고, 아무리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생각과 의견을 정리해 글을 쓰는 데에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냥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적어 내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집중력이 약해지더니 요즘 들어 책의 첫 장을 넘기기도, 아니 책을 한 권 시작하기도 어려워졌다. 취미로 찾아 읽던 독서가 의무감에 읽는 독서가 되어버렸다. 책을 자주 찾지 않다 보니, 큰 고민 없이 술술 써지던 글도 이제는 혹여 괜히 겉멋만 잔뜩 든 엉뚱한 문장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어 한 자 한 자를 써 내려가기가 두렵다. 겨우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혹은 한 문단을 쓰고 나면 나를 쳐다보는 듯한 검은 화면 속 스마트폰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 「생각하지 않는 사람(The Shallow)」에서는 인터넷이 자신의 정신적 활동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나는 엄청난 양의 글을 읽고, 또 적어야만 하는데, 그냥 훑고만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또한 ‘국어교육과’라는 주전공과 맞지 않게 독서에 어려움을 겪으며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 부끄러울 뿐이다. 수업 듣는 과목 중,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발문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여기저기 건너뛰며 주요해 보이는 부분만 골라 읽다, ‘독서를 위한 발문’이 아니라 ‘발문을 위한 독서’가 되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마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반성하라고 자신에게 외치고는 첫 장을 다시 펴는 것이 다반사였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화되었다. 무언가를 잘못 입력했을 때는 그저 ‘되돌리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마우스 드래그를 통해 오른쪽에 있던 것을 왼쪽, 위, 아래로 옮기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인터넷의 자료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일도 몇 초면 이루어진다. 반면에 종이 위에 한 문장을 써내려 가는 것에는 꽤 많은 애정이 들어가며, 나만의 글씨체로 나만의 글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정성이 가득 필요한 일인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종이 위에서는 그 무엇도 수정할 수 없으며 공책 한 장을 찢거나 수정테이프, 지우개로 박박 지우며 자국이 남는 것에 속상해하는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필기 앱을 사용하다가 종이로 넘어가 필기할 때 혹시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손짓한 적이 있는가. 나는 부끄럽게도 스마트 기기에서 사용하던 버릇이 종이에 나타나서 몇 번이고 허공에 ‘확대’와 ‘축소’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스마트 기기보다 종이를 사용한 시간이 훨씬 길지만 이미 그러한 기기에 본인의 뇌와 몸이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 두렵고 한심했다. 뇌가 이미 아날로그 세상보다는 디지털 세상과 더 친해져 버린 것 같았다.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몰두하기도 힘들어졌다. 니콜라스 카는 말한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 인터넷은 나를 초고속 데이터 처리기기 같은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 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뇌의 가소성(可塑性)'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형성되고 발전하여 우리가 사고에 필요한 영역을 쓰지 않게 되면 이 영역은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어 버린다. 이는 우리가 디지털 매체에만 너무 의존하게 되면,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아날로그적 기능이 다른 자극적인 매체 기능에 대체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디지털 세상, 돌아온 아날로그 세상이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만히 앉아 사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이 늘 옆에 있다. 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혼자가 아니다. 자기 전에는 어두운 방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하여 잠들고,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에도 우리는 늘 함께한다. ‘뭐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10년, 50년이 지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더 고민하려 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에만 우리의 뇌를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디지털이 뇌를 다 감싸버리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아날로그를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요즘 사진을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보정되는 너무나도 고화질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그 시절 감성을 담아야 한다며 구석에 보관해 뒀던 옛날 스마트폰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따라가려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옛 감성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흐릿한 필터가 씌워지는 앱을 사용하기도 한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레코드판의 감성이 좋다며 예스러운 카페를 찾아가기도 하고, 프린트 한 번이면 될 것을 필름 카메라를 가져다가 인화한다. 누군가 보면 ‘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 이런 아날로그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감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표식으로 느껴졌다. 디지털 기기에 지친 뇌가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게 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독서는 이러한 아날로그 감성을 채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의무감에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고심 끝에 선택한 도서와, 읽기로 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마주하면 분명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아 디지털 시대 속 ‘쉼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초대해 주며, 그 안에서 주인공의 감정과 고민에 공감하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 느끼는 종이의 촉감과 향기는 우리 자신의 감성을 찾아내는 일종의 여행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종이와 펜을 꺼내 주섬주섬 적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이처럼 책이 선물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고, 우리의 시선을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돌려 디지털 세상과 멀어지게 함이 분명하다. ‘수많은 책이 보여주는 과묵함 덕에, 또 이 책들은 자신들을 정확히 필요로 하는 독자가 다가와 서고 내 고정석에서 자신들을 빼내 줄 때까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이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독서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책은 우리가 먼저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이를 한 글자씩 음미하며 이를 읽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게 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잠시 나와,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괜히 날이 좋아 뚜벅이 산책을 시작해 보자. 한강에 지는 일몰이 좋아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고, 노래를 듣다 풍경을 바라봤을 때 가을이 다가옴을 느끼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감성이 현재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별거 없다. 내면의 감정과 소통하고, 스마트폰에 열중하다가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주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현실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찾아가는 것. 사유의 시간을 통해 우리 자신의 감성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 감성은 효율성과 신속한 만을 강조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조금은 느리기도 한, 문화일 수 있다. 다만, 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오래 지속되며, 어딘가 몽글한 그리움을 주기도 한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기에, 디지털과 온전히 멀어질 수는 없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둡게만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을 찾아, 함께 공존해 나가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차지해 버린 디지털 세상에 위기감을 느껴 자신의 삶을 한 걸음만큼, 아니 반걸음만큼이라도 감성과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려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감성을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대화하고, 독서를 하고 이런 사소한 것 말이다. [참고문헌]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재은, ‘아날로그적 감성의 길, 종이책’, 우버인사이트. 2018.03.22.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윤세미, ‘"엄마 옛날폰 제가 쓸래요"…구식 기기에 열광하는 10대들, 왜?’, 머니투데이. 2023.01.22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디지털 시대 속 주목받는 아날로그…"'디지로그' 제품이 뜬다"’, 파이낸셜뉴스. 2022.04.29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제 6 호 설악 오색 케이블카 착공 즈음에
정기자 임지혁 jihyuki@outlook.com 아마도 모든 것이 태초부터 균형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한다. 가령 어릴 적의 사회과부도를 머리 속에 떠올려보면 수자원이 풍부한 남해 지방과 논밭이 펼쳐진 호남지방, 교통이 편리한 대전이나 대구 등 지역마다의 특징이나 강점에 대한 내용들이 기억나고는 한다. 그런데 수업의 내용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 불량 학생이었다면 그보다도 다른 내용에 관심을 가져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자원도 없고 논밭도 발달하기 어려우면서 교통도 불편한 불우한 지방. 영동이라는 지방도 그런 곳들 가운데 한 곳이다.[1] 아마 그곳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얼마 없지 싶다. 당연한 일이다. 그쪽에는 사람이 잘 살지 않는다.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에서 오기에도 불편하고 남쪽에서도 오기에 불편하니 사람들이 모일 일이 없는 동네이다. 그나마 북쪽의 원산에서 오가기에는 편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쪽은 이미 오래 전에 막힌 길이다. 수자원이라 해봐야 오징어와 황태, 그런 소규모 건어물 위주로만 발달하였고 태백산맥 동쪽으로 몇 km 남짓한 평야에서는 제대로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 먼 옛날에는 낙랑, 동예, 옥저. 이런 곳들의 세력권이었다고는 하지만 변변한 유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그쪽 동해안에는 사람이 잘 살지 않는 데다 먹고 살 거리도 별로 없다. 이번의 이야기는 근세 그곳의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내용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사람들이 택한 첫 장소는 설악산이었다. 이 글의 독자들 가운데 설악산이라고 한다면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산 이름이야 들어본 사람이 많겠지만 세부적으로는 기껏해야 동화로도 출간된 오세암 설화 정도나 알지 않을까 싶다. 대청봉이나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 그런 이야기들은 나이대가 조금 올라가야만 대화가 통하고는 한다. 설악은 원래 금강산 옆에 있는 산 정도로 여겨졌다. 금강산과의 거리도 멀지 않아서 금강산이 이미 전근대에 국내외로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말 그대로 부속된 산 정도로, 그나마 절경이던 울산바위 정도가 유명하다는 정도로 인식되던 곳이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소외되던 설악산의 진가를 발견한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의 일제 당국이었다. 당시 금강산선 철도 개통 등 금강산 관광 개발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일본은 그 부근에 있던 설악산의 가치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같이 심미적인 요소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실질적으로는 동해선 철도 건설에 발맞춘 착취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945년의 광복으로 설악산 관광이나 동해선 완전 개통은 미수에 그치고, 해방 후 경제난과 전란으로 설악산 일대의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특히 전란 때 설악산은 격전지 중 하나였다. 그러던 설악산의 운명을 뒤바꾼 것이 군사정권이다. 비민주적으로 집권한 그들에게는 권력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했으므로 경제 발전은 그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성과이자 근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경제적 상황은 인구가 많은 호남 지역에 대해서도 홀대론이 나오는 마당에, 인구도 적고 산업이 발달하기도 어려운 영동 지역에 투자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설악산이 한국의 요세미티’라니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설악산 관광 지구의 개발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영동지방에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발전에 대한 증표였다. 실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휴가 때 설악산 비선대 등지에 종종 방문했다. 1978년 11월의 생전 마지막 생일도 설악산 관광호텔에서 맞이했다. 설악산은 점차 관광 단지로서 개발되었다. 1970년에는 그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1971년에는 지금도 명소로 남아있는 케이블카가 (박정희의 사위인) 고 한병기 씨가 사업권을 흭득해 운영을 시작한다. 이 즈음 설악산의 입구나 다름없던 이른바 ‘설악동 170번지’는 도회지와 다를 바 없는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호황은 그곳 사람들의 일터가 되어주었던 명부(明部)와, 상인이나 숙박업소의 폭리나 유흥업소의 대두와 같은 암부(暗部)를 모두 포함한다는 것에 유의해야만 한다. 그 후로 설악동은 두어 번의 변천을 겪는다. 처음은 1978~1979년 즈음에 설악동종합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170번지에 살던 사람들이 공원에서 더 떨어진 곳으로 더 바깥쪽으로 쫓겨난 것, 그리고 그 즈음에 박정희 정권이 끝을 고하는 변화이다. 하지만 관성이라고 할지 설악동이 그 직후에 몰락한 것은 아니다. 이 변화로 비록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관광 개발 사업의 절대적인 후원자가 사라졌지만 90년대까지도 그곳은 상업적으로 성황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그 후의 점진적인 변화로서, 적어도 1999년생인 필자가 살던 어릴 적의 설악동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 이렇게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몰락, 이것이 두 번째 변천이다. 만약 지금 설악동과 소공원에 간다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숙박업소들은 완전히 몰락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폐허가 되었다. 반면 공원에 도착해서 단풍 속 풍경에 녹아든 켄싱턴 호텔에 다다르고, 권금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게 되면 그 일대는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케이블카는 여전히 만원인 채로 권금성을 오가고 있다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영동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즉 설악산의 이야기는 명백히 해피엔딩이 아니다. 설악산은 그 때 그 곳의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지속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는 않았다. 대신이라고 할지, 그 후로 영동지방의 중심지는 바닷가 쪽으로 옮겨갔다. 주된 산업은 여전히 관광업이지만 이제는 그 배경이 설악산이 아닌 동해 바다가 된 것이다. 그 일대의 대표적인 시장이던 속초중앙시장이 언젠가 그 정식 명칭을 관광수산시장으로 바꾸었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만석닭강정’이라던지 하는 업체들도 모두 이 시기에 성장한 곳들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영동지방은 확실히 환경이 나아진다.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이 양양국제공항으로 통합되며 항공 교통편이 불편해졌다고 하지만, 도로교통은 44번 국도와 미시령터널, 7번 국도가 점차 정비되면서 확연히 좋아졌다. 여기에 서울양양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까지 개통하면서 어느새 영동 지방은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과거, 눈이 내리면 그야말로 목숨 걸고 고갯길을 넘어야만 했던 시절에 비하면 천지개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춘천속초선이나 동해북부선의 철도 노선도 개통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곳의 미래는 마냥 장밋빛으로 보이기만 한다. 속된 말로 집값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의 영동에서 종종 어두운 과거를 바라보고는 한다. 예전처럼 관광산업으로 그곳은 부흥하고 있고, 한편으로 교통편도 좋아졌으니 과거 설악산의 호황처럼 그저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도대체 누가 고성 속초 양양에서 산다는 말인가? 그곳에는 번번한 대학교도 없고, 산업단지라고는 조그마한 농공단지 몇 곳이 있을 뿐이며 일자리라고는 아르바이트나 노인일자리사업 정도가 전부이다. 그저 관광지에다 노후의 은퇴지, 국가 차원에서의 5공화국과 6공화국 모든 정부의 영동에 대한 인식은, 그 오진 곳에까지 경제 성장을 일구었다고 자신만만할지는 모르겠지만 박정희 때의 그것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셈이다. 그 때에는 나라가 가난했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지금은 무어란 말인가. 사람들은 밥을 굶지는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생존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오색에 케이블카가 들어선다고 이곳이 부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지역균형발전, 뭐 그런 구색 좋은 이야기를 붙여서 사업이란 걸 한다지만 볼품없는 그곳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 정도의 떡고물이나 떨어질 뿐이다. 그딴 돈 꾸러미를 대준다고 해보아야 어디에 쓰겠는가.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명부(冥府)의 샛길을 지나왔다. 지역균형이라는 목표는 이미 끝장났고, 그런 곳이 영동 뿐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아니, ‘서울 사람인 우리들’에게는 별 일 아니겠지만 말이다. [1] 영동지방이라는 말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 지방을 의미하는 말로써 강릉이나 동해 일대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영동 북부, 즉 고성, 속초, 양양에 대해서 다루기로 하겠다. 이는 영동의 남부 지방은 영동고속도로, 철도 노선 등으로 북부와는 맥락이 다소 다른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큐레이터. (2023). 일제강점기 설악산 대청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루트파인더스. http://www.routefinder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79 최재도. (2011). <기억 속의 설악1번지> ‘그곳’에서 ‘그때’를 만나다(3). 설악신문. http://www.soraknews.co.kr/renewal/kims7/bbs.php?table=news&query=view&uid=22775 김홍준. (2022). 스러지는 설악동 … 가게 사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유령 나올 것 같죠?”.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3161#home 최기영. (2015). [미공개 기록 강원도는 대통령들의 안식처였다]박 전 대통령의 생일 아침식사는 비선대 감자부침 한접시. 강원일보. https://kwnews.co.kr/page/view/2015010600000000167 이승용. (2016).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 가열, '박정희 사위 한병기 특혜' 재조명. 비즈니스포스트.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3141 이미지 출처(표지) 박서보. (1977). 묘법 No. 18~76~77. 현대화랑. https://hyundaihwarang.com/?c=artist&s=1&gbn=slider&gp=1&ix=160
제 6 호 너 혹시... T야?
정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유행-MBTI=0 ? “너 혹시 T야?”,혹시 당신도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유행어는 유튜브 채널 <밈고리즘>의 폭스클럽 시리즈 속에서 시작되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헌팅 계획을 세우는 김지유와 한지원에서 허미진은 공감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시킨다. 그때 그녀들은 말한다. “언니 T야?” MBTI,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MBTI 없이하는 대화는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일상에 스며들었다. 나는 첫 만남에서 할 말이 없을 때 말한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럼, 상대는 말한다. “뭘 것 같아요?”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고민한다. 음, 저 사람은 말수가 없어 보이니까 일단 I, 아까 밸런스 게임을 했으니까 N.. “INTJ?”하고 MBTI 유형 중 하나를 말한다. 지금 이 글은 읽는 당신도 이 문답을 적어도 한 번 이상 경험해 봤을 거라고 확신한다. 또 ‘나는 휴일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휴일이면 무조건 집에 있어야 한다! ’같은 뻔한 질문으로 이루어진 인터넷 테스트 같은 것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한 가지 테스트가 유행하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 테스트의 결과가 주르륵 올라와 있고, 곧 다른 테스트가 또 유행한다. Table 1 테스트릿 크리스마스 카드 성격 테스트 MBTI가 뭐길래, 우리는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MBTI가, 성격검사가 뭐길래 개인적으로 MBTI... 사용하긴 하지만,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 MBTI에 대한 몰입들이 너무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선호하지 않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멸칭 때문이었다. MBTI 유형 중 하나인 INFP를 ‘씹프피’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작 MBTI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아닌가. 주변에 INFP들이 꽤 있지만, 그렇게 욕을 들을 만하게 살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계기가 있지만, MBTI가 싫다는 말을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기에 말을 줄이겠다. 하지만 유행한다는 것은 그만한 장점이 있다는 것. 지금부터 장점부터 단점까지, MBTI에 대해 상명대학교 학우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Q. MBTI가 있어서 좋은 점이 있나요? 슴우1 -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같아요.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소개하기 편한 것 같아요. MBTI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삶인지를 짧은 시간에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상대가 자신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MBTI를 알면 대략적인 성격도 이해할 수 있고, 행동 방향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슴우2 – 심리검사의 대중화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원래 심리검사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덕분에 심리검사에 대한 대중성이 높아진 것 같고, 더 나아가 상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MBTI가 있어 싫은 점이나 불편한 점이 있나요? 슴우1 - MBTI는 사람을 단순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성격을 유형화하다 보니 T 아니면 F처럼 이분법처럼 표현해서 변수를 지워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검사의 신뢰도가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MBTI 하나로만 표현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 것 같아요. 유형마다 차이가 있고, 그 유형 속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T, F 성향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강해지는 유형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저조차도 MBTI에 갇혀 더 깊게, 넓게 살펴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요. Q. MBTI, 어떻게 써야 할까요? 슴우2 - 첫걸음처럼 여기면 좋을 것 같아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첫 만남, 나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때처럼요. 그리고 검사를 시작할 때 MBTI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으며,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MBTI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된 사실에 지나치게 얽매이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 직접 알아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우들은 MBTI를 즐기면서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고, 앞으로 MBT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학우들은 이미 MBTI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고, 이러한 학우들을 보며 MBTI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의한다면 활용도가 어마어마하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성격 검사 같은 것에 열광해 왔다. 예를 들자면, 혈액형. 세심한 A형, 자유로운 B형 사교적인 O형, 독창적인 AB형. 이런 것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알록달록한 책을 펼치고 너는 어떻고, 나는 어떻고 살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얼마 전에도 친구가 헌책방을 다녀왔다가 B형 성격 특성이 적힌 책을 선물해 주었다. 추억에 잠겨 책을 펼쳤다. 그리고 ‘아니 이거… 잘 맞는데? 완전 난데?’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리 몰입하지 않으려고 하고, 적힌 내용이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해 봐도…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을 파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까? 우리는 평생을 고민하며 산다. 나는 어느 학교로 진학할까, 나는 어느 학과를 갈까, 나는 어느 직업을 가질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규격화된 일상에 머무르며 나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 사이에서 혈액형, MBTI 같은 것은 나를 찾기 위한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특히 MBTI는 일반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교적 나의 성격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 나갈 단서를 얻게 된다. 우리 삶에서 MBTI는 사라질 수 없다. MBTI가 사라진다고 하면 다른 검사나 유형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늘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MBTI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찾기 위한 단서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이 검사 접근성이 좋은 사회가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MBTI에 대한 검사를 유지하되, 검사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보조 기구를 준비해 둔다면, 우리에게 더욱 유용하게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자료] 테스트잇 . 크리스마스 카드 성격 테스트 . https://test-it.co.kr/test174
제 6 호 가족복지학과 학생입니다
정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아, 힘든 일하시네요. 나는 가족복지학과다. 가족복지학과는 가족, 보육, 상담,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다. 이중 나는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졸업 후 사회복지관 취업을 생각하고 있다. 나로서는 여러 번 고민하고, 현장을 경험해 보며 겨우 내린 결론이다. 내 계획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좋은 일 하시네요? 힘든 일 하시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갑의 위치보다는 을의 위치에 있을 때가 많고, 상상 이상으로 많은 업무를 하는 직업이니 말이다.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정한 내 진로를 단순히 좋은 일, 힘든 일로 만들어버리면 기분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거나 흥미 있는 일을 누군가 한마디로 정의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말하는 이도 나쁜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칭찬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숨기고 하하 웃으며,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요!’하고 넘겨버린다. 아무리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내가 선택한 일이기는 해도, 옆에서 왜 힘든 일을 하냐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가끔 심란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내 진로가 잘못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이 나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즘 취업이 쉽지 않은 문과 계열 학생들도 비슷한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교권 이슈가 뜨거운 요즘 사범대나 보육 계열 학생들도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계열 학생들이 아니라도 이과, 예체능 계열 등 학생들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경험하거나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학과와 학문, 그 위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요. 나의 경험과 동기가 가장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시 자기소개서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대입 자기소개서와 1학년 때 썼던 자기소개서를 뒤적여보았다. 자기소개서에는 약간의 과장과 패기, 자신감이 섞인 엉성한 글이 있었다. 나는 인권에 관심이 있었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를 생각해 보면, 차별에 대한 이슈를 뉴스로 마주하며 생긴 분노가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같은 인간인데, 누군가의 일상이 가시밭길인 그런 사회가 싫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사의 분노’라고 한다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사회복지사는 착한 사람이 할 것 같은 직업이니 말이다. 이처럼 사회복지사 지망생, 사회복지사의 동기나 가치관은 모두 다르다. 더불어 사회복지사는 단순히 봉사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약자를 위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전문성을 가지고서 약자에게 직접 접근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후원을 받기 위한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마다 다른 원동력을 가지고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을 한다. 다른 직업들과 다를 바 없이 말이다.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학문을 생각해보면 나는 보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보육 교사라는 직업은 얕잡아 보일 때가 많다. 보육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무시와 폭언과 같은 이야기는 잊을만할 때가 되면 다시 뉴스에 등장한다. 최근 경기 북부 한 유치원에 찾아온 학부모 A씨는 “작품활동 시간에 왜 내 아이만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며 교사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보육 교사 또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임에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해 버린다. 보육은 다양한 범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비교적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의학은 서적을 읽는다고 의사는 아니고, 법전을 읽는다고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학과 관련 중 농담 하나를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것 하나. ‘문과여서 죄송합니다, 줄여서 문송합니다.’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사회는 비대면·디지털화되면서 IT 인력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국내 은행들은 최근 어플리케이션 구축, 데이터 관리 기술 등에 관심을 쏟으며 IT 인재만 채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2022년 진행된 한국리서치의 '문과 학문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과 계열 학문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문과 계열 학문은 인간 내면의 성장에 도움이 되나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시대가 변화하며, 생산성이 강조된다.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와중에 인간을 다루는 학문은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중요도가 떨어지자, 전문성에 대한 인식 하락이 뒤따르고,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직업이든 남에 의해 딱 한 마디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없고, 결과물의 양을 같은 단위로 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문성에 대한 것도 그러하다. 그 계열과 모양새가 다를 뿐이지, 전문성은 어느 학문에나 분명히 존재하며, 급을 나눌 수도 없다. 그냥 앞으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이, “문과가 최고다. 세상에는 결국 인문학과 문학, 사회학만이 승리할 것이며, 이과는 멸망할 것이다!”같은 말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경험해 왔던 계열은 주로 문과였고, 주변인들도 인문사회 계열 사람이 다수이다 보니 문과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문과 이외의 학생들도 분명한 고충이 있고, 전문성을 무시받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 학과, 학문만의 전문성이 있고, 그 안에 학생들은 그 이상의 동기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생산성'에 몰두한 나머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양극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을 가르고 등급을 나누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인간이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혹은 두루뭉술한 신념과 가치로서 어떤 행동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지루하더라도 구석에 있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라든지. 이 글이 숨어있는 가치를 되찾거나, 더욱 빛나게 하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힘든 일 하시네요? 같은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진로가 변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동안 배워온 것은 분명히 좋은 경험일 테니까. 지금은 그저 내 전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이 무슨 전공이든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자료] 임주형 . (2021.6.17.) "문송합니다"…좁아지는 문과생 취업문, '문사철'은 오늘도 '한숨' . 아시아경제 . https://www.asiae.co.kr/article/2021061615070135803 장혁재, 서정인, 박정민 . (2023.5.16.) . “문송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 홍대신문 . http://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360 오민주 . (2023.11.20.) . 무릎 꿇리고, 툭하면 악성 민원... 피멍 드는 '보육 교권' . 경기일보 .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1119580064
제 5 호 에세이, 좋아하세요?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여태현, <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목차 中 에세이에 관한 단순한 궁금증으로부터 나는 서점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이 주는 고유한 향기와 책들이 나를 감싸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즐긴다. 베스트셀러 가판대 앞에 서서 책 제목을 구경하고, 마음이 끌리는 제목을 발견했을 때 한두 페이지씩 읽어보는 설렘이 좋다. 그렇게 내가 손길이 가는 제목을 가진 책들은 소설 아니면 인문학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점 베스트셀러 가판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사실 난 한 번도 제대로 에세이를 완독해 본 적도, 내 돈을 주고 에세이를 구입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에세이(Essay)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 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을 뜻한다. 이처럼 나에게 에세이는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만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꼭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저 위로와 공감의 따스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한 위로와 공감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인 이유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서점에 가서 보는 에세이들의 제목은 이러하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오늘부터 성장할 나에게’, ‘나의 봄날인 너에게’,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제목만 봐도, ‘너’와 ‘나’,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한 내용을 가득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는 딱 이 정도였다. 제목만 보고 느낀 이 정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에세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에세이를 찾아 읽고, 에세이 속의 삶을 동경하고 닮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 정리를 하고자 무작정 버스를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발걸음이 자꾸만 소설이 가득한 책장 앞에 멈춰 섰다. 적당히 구경하다가 에세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에세이가 가득한 공간에 가니, 제자리에 서서 에세이 한 권을 골라 읽는 사람도 있었고, 미리 서가 위치를 프린트해 와 책을 찾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순간 궁금증이 생겨,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에세이... 좋아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에세이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얼핏 당황한 듯 보였지만 모두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기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책 위치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있던 한 여성분은 “항상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생각만 하고,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저를 대신하여 예쁜 문장으로 대신 정리를 해주는 느낌이라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해져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 해주었고, 한 피디의 책을 읽고 있던 분은 “친구가 자신이 써오던 일기를 에세이로 출판한 것을 계기로 처음 에세이를 구입해 읽어보며 에세이의 매력에 빠졌어요. 평소 관심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돼요.”라며 자기 경험을 살려 이야기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에세이 신간을 들여다보던 분께 질문을 드렸다, 그는 “정신없이 일하면서 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기도 했고, 누군가와의 만남에 대한 접점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고,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쑥스러운 듯 답해주었다. 사람들은 에세이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가진 사람의 발자취가 궁금하여,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읽기도 했고, 나와 같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찾기 위해 에세이를 읽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다른 빛을 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삶이라는 무대를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다. 에세이는 이러한 사람들의 무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해 주며 누군가에게 인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주위 사람들에게 섣불리 하기 힘든 감정과 생각을 책을 통해 정돈하고 치유 받는다.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점도 이러한 이유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장르는 몰입력에서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나의 책장을 보면 더 흥미롭게 읽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소설이었지만, 밑줄과 인상 깊은 페이지를 종이로 접은 부분은 에세이가 더 많았다.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며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구절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에 딱 드는 소설을 하나 발견하면 그 책에 몰두하여 새벽을 달려 결말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자야 할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책을 덮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은 어느 정도의 각색과 허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사람을 매료하는 매력이 있긴 하나, 에세이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쓴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언제든지 찾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에세이는 독서가 힘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페이지를, 원하는 시간에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어렵지 않게 다가간다. 그렇기에 이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사회에 더욱이나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분도 약속 가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서점에 와 에세이 읽고 있었다고 답한 걸 보면, 언제든 편하게 펼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에세이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에세이라고 안 읽을 이유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 나는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보았다. 이제는 내가 직접 에세이를 읽고, 느껴봐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또 한 번 서점에 방문하여 에세이 한 권을 들어 몇 장 들춰보았다. 나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이 적은 이야기, 책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쓰여있었다. 단편적인 구절과 장면을 본 것이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고, 꽤 큰 힘을 얻었다. 평소에 위로와 공감은 나 혼자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혼자서 극복하기에 버거움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위로와 공감을 얻기보다는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거나, 소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나에게 더 솔깃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에세이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이자 간접 경험이 되어줄 수 있겠다. 에세이를 읽으면 "저 사람은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와 같은 궁금증이 들며 나 혼자만의 사유와 사색을 시작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대면하며 나누는 대화는 생생하며 활기차고 재미있다. 다만, 매 순간 상대의 본 마음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꽤나 머리를 쓰게 된다. 나는 보통 이야기를 하는 역할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지션에 놓였던 것 같다. 대면으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내 말에 대한 상대의 피드백이 직접적으로 돌아온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을 넘어서,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생각하는 나의 성격상 이에 대해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에세이를 읽고 느꼈다. 에세이를 읽는 그 시간, 그 공간만큼은 자유로운 나만의 것이 된다. 상대와 나 사이에서 머리를 쓸 필요도, 상대의 말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그저 글의 의도를 천천히, 나의 시선에서 여유롭게 사유하고 느끼면 된다. 에세이는 독자에게 주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설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 것과 같이, 에세이에도 여행 에세이, 그림 에세이, 감정 에세이 등 분야가 다양하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골라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마음이 이해됐다. 결국 에세이를 읽는 이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세상에 대한 따스한 호기심에 책을 펼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아 읽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에 시작한 글이었으나 글을 쓰며 에세이의 매력에 점차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납득시키기 위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울릴 에세이 한 권을 만나 여러분들 앞에 소개할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제 5 호 우리가 포기하는 것들에 대하여
정기자 송지민202110353@sangmyung.kr 저는 작년 겨울쯤부터 '포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포기란 무엇일까, 내가 포기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포기하면서 살아갈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그리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난 반년 동안 제 머릿속에만 머물러있던 생각들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 N포세대 > :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 여러분은 혹시 '3포세대'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3포세대란 취업난, 불안정한 일자리.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용의 지출 등의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 세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2011년 경향신문의 특별취재팀의 기획시리즈인 <복지국가를 말한다>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로, 각종 미디어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엔 이에 더해 5포세대(3포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7포세대(5포세대+꿈, 희망)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 여러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7포세대가 왔다 하니 정말 마음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위 N포세대에 해당하는 것 중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은 저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고려하기엔 저 스스로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포기했고, 포기하는 중인가요? 아마 연령대별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비슷한 것들을 포기하겠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연령대별로 포기한 것들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아래의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무엇을 포기했는지 읽어보며 공감도 하고 스스로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에 앞서 제가 어떤 질문을 드렸는지부터 소개하고 갈게요. 아래 질문들은 '포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순수하게 타인의 '포기'가 궁금해서 떠올린 것들이에요. 여러분도 먼저 아래 질문을 읽고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 본 다음, 인터뷰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당신은 살면서 무엇을, 왜 포기하셨나요? 2. 그때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답변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3. 그것들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얻은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10년생 > #1. 저는 전학을 오게 되면서 원래 학교에 있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전학을 가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 네, 당연히 돌아가고 싶어요.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과 다시 한번 놀고 싶고, 요즘도 '그때 안 떠났다면?'이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기 때문입니당! #3. 제가 얻은 것은... 더 좋은 교육 환경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를 옮기면서 사교성이 발달한 것 같습니당! < 00년생 > #1. 어렸을 때부터 사범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내신이 걱정되어 원래 가고 싶었던 외고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원하던 사범대에 입학했지만, 원래의 바람대로 외고에 진학했다면 제 인생이 학업적으로, 인간 관계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을까 가끔 생각해 보기는 합니다. #2.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고에 진학해서 남녀공학의 산뜻함?도 느껴보고, 영어를 좀 더 집중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기숙사에 살면서 친구들과 남다른 추억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고등학교를 갔다면 어떤 대학에 진학했을지도 궁금합니다. #3. 일단, 저와 유머코드도 성격도 정말 잘 맞는 소중한 친구를 한 명 만났습니다. 이 친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고, 스무 살 때부터 제 인생에 없던 적이 없었을 만큼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를 만난 것이 스무 살 때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전역 후에 만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바빠서 못 보는 날도 있지만, 보는 날이면 그날 하루가 편해지고 웃음이 납니다.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계속 얼굴 보고 연락하며 더욱 친해지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중학교 3학년 때 했던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사범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 89년생 > #1. 직장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2. 돌아가기 싫습니다. 결혼해도 재정적 여유가 없다면, 더 힘들고 불행한 삶을 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3. 제가 얻은 건, 현재의 안정적인 삶과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인 것 같습니다. < 70년생 > #1. 저는 직장 생활을 30년간 해온 평범한 사람입니다. 포기는 아니구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가정 형편상 갑작스럽게 돈을 벌어야 했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네요. 적성에도 안 맞는 일을 30년이나 하고 있으니 즐거운 직장 생활은 아니겠죠. #2. 다시 30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기술을 배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네요. 지금도 엔지니어지만, 카오디오튜닝 쪽 일을 배우고 싶었어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갖고 차분히 기술을 배워 카오디오 샵을 운영해 보고 싶네요. #3. 급하게 들어간 직장이긴 하지만, 한 직종에서 장시간 일한 덕에 기술 습득도 많이 했습니다. 지겹긴 하지만 천직이다 생각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근무 중입니다. < 59년생 > #1.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가정 형편을 생각하여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2.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이후 현재까지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왔으며, 지난 세월에 대해 충분히 만족합니다. #3.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멋진 경험을 하여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지금'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방금 전에 제가 한 말,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누군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 크고 작음을 나누다니요... 저도 모르게 제가 겪어보지 못한 연령대에서 발생한 포기는 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어요. 우습게도 처음에는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마냥 대단한 것을 포기해야 진정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포기'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보았어요. (지금부터는 저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해요.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해요.) 저는 열 살 아래 동생이 있어요. 동생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태어났고, 당시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 중이셔서 많이 바쁘셨어요. 저는 동생이 너무 귀엽기도 했지만, 제가 동생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학교와 학원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생과 함께 보냈어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랑 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어요. 이걸 포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동생이랑 함께한 시간이 굉장히 행복했거든요.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또 이야기해 보자면, 저는 지금의 학과에 진학하기 전에 배우고 싶은 분야가 따로 있었어요. 그렇지만 수능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었고, 방황하다가 결국 그 분야를 제외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지금이 만들어졌어요. 이건 포기가 맞는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의 기억을 꺼내어 적어 보니 당시에 느꼈던 아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포기'라는 것은 그런 걸까요? 무엇을 포기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아쉬움과 슬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얼마나 크게,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지가 중요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포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듣고 싶어지네요. 우리는 각자 다양한 이유로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사정이나 환경에 의해서, 혹은 다른 무엇이나 누군가를 위해서 같은 이유들이요. 그런 포기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후회나 미련, 슬픔 같은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남을 텐데(반드시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어느 노랫말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기억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쓸 수도 없을 텐데 말이죠. 사실 이 글의 마무리를 짓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떤 말을 적어야 여러분께 지혜로운 답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해도 그 답을 모르겠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저조차도 제 안의 남은 것들을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뭔가 아는 듯이 말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꼭 해결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떠올랐어요. 그러한 기억들과 그들에 의해 남은 마음도 '지금의 나'의 일부인데 말이죠. 조심스럽게 제가 내린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들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의 나의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자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왜, 유명한 책에도 나와 있잖아요. “The Present Is The Present Moment!” 현재가 영어로 present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제 정말 글이 끝나가고 있네요. 위에 제가 한 말들이 결코 답은 아니지만, 저는 단지 여러분이 포기로 인한 어느 감정들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이 더 나은 현재를, 그리고 그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가시길 바라며 이번 기사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제 5 호 전화가 무서운 나, 콜 포비아인가?
수습기자 이선민 202115029@sangmyung.kr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연락이 오는 상황이 어찌나 긴장되고 무서운지, 전화를 받기까지 많은 심호흡과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 구인 당시, 문자로 지원하면 상대방 쪽에서 전화를 주시는 방식이었다. 전화가 무서웠던 나는 전화를 받지 못하고 끊길 때까지 기다린 뒤에 할 말을 정리해서 문자로 연락을 드렸다. 전화해야 할 상황이 오면, 할 말과 예상되는 답변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리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한 상태로 전화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잘 대변해 주는 단어가 생겼다. 바로 “콜 포비아”이다. 콜포비아는 Call(전화) + phobia(공포증)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전화하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고 공포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콜포비아는 정확한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전화를 두려워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주는 하나의 장애 요인이라고 정의하는 사회적 용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콜포비아 현상은 왜 생겨났고, 우리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Call(전화)의 시작] 전화가 처음 특허 신청이 된 해는 1876년이고, 1993년 스마트폰은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제조 업체 ‘IBM’이 박람회에 처음 선보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00년은 훌쩍 넘긴 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화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먼 거리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여론 조사나 텔레뱅킹 등에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전화를 활용한 다양한 영역의 확장은 우리에게 더욱 편리하고 영위한 삶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던가, 이러한 과도한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난관을 주었다. 편리한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화를 편리한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는 불편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즉 과거 영광의 전화는 더 이상 소통의 수단이 아닌, 애물단지처럼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사진 1] MZ세대가 선호하는 소통 수단 [콜포비아에 대한 생각] 콜포비아라는 현상은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10대, 20대 층에서 전화에 대한 높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처음 사회로 발을 내딛는 2-30대, 일명 MZ세대는 SNS와 문자 메시지를 통한 비대면 소통에 익숙하다. 이러한 그들의 사회진출 시기가 우연찮게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환경요소가 겹치게 되면서 더욱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주변에만 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콜포비아 현상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중장년층에도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서, 단순히 젊은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대부분 사람이 콜포비아를 느끼는 이유는 낯선 누군가와 대화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즉각적인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문자와 달리 생각할 시간이 없이 즉각적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전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더듬증과 지나치게 긴 침묵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을 못 했다는 자책감과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문자, 메신저로 소통하는 비대면 환경은 기술 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비대면 환경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 대신, 내가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 부분을 한 번 더 다듬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음에 더욱 깊이 있는 답과 표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여, 더 넓은 범위의 의견 표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보다 심도 있는 대화와 누군가의 의견을 좀 더 깊이 생각할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콜포비아에 대한 부정적인 현상과 해결에 가고자 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콜포비아는 ‘face to face 소통’에 약해서 글의 문맥만을 가지고 파악하던 부분이 오히려 직접 대면했을 때, 상대방의 감정과 뉘앙스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음보다는 현재 상황에 놓인 나에 대한 이해를 먼저 요구하게 되면서, 점차 사회적 도태가 이뤄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인간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와의 소통과 교류를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야 하고, 끊임없이 행해야 하기에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우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콜포비아 현상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와의 대인관계를 약화하고, 결국 소통의 단절로 이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점이다. 문자와 같은 비대면적 요소를 통해 소통은 가능하지만, 결국 직접 목소리를 듣고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몰입도가 떨어지면서 결국 사회로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생각해 보면 현재 21세기 우리는 IT 발달로 인해 전자기기 및 미디어에 많은 노출이 되어있고, 대면해서 대화하기보다는 메신저나 문자를 통한 대화의 빈도가 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콜포비아가 해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과 대책을 제시하면서, 이를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다루고 있다. 실제로 스피치 학원에서는 콜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어 실전처럼 가장하여 상황극을 벌리기도 하고, 원활한 대화를 이뤄지게 하려고 10분 대본 작성이라는 수업도 있다고 한다. 또한 병원에서도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전화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 현상은 새로운 사회적 풍조로 자리를 잡았다라는 방증이라고 여긴다. [콜포비아,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 콜포비아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대표적으로 전문가들은 '단계적 노출 요법'을 제안한다. 단계적 노출 요법이란 불안을 느끼는 대상이나 환경에 점진적 혹은 단계적으로 노출되면서 불안과 공포를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즉 예를 들어, 혼자 말하거나 편안한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긴장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 단계 나아가 가게에 가서 직접 주문해 보기, 내 생각을 남한테 전달해 보기 등의 방안으로 근본적인 두려움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쓰면서 콜포비아의 모습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고,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들도 많았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걱정이 앞서는 사람에게 상대방도 나처럼 전화하는 순간이 어렵고 힘들 수 있음을 인지해 보자. 처음부터 완벽해지고자 하기보다는 하나씩 순서를 밟아 풀어나간다는 마음으로 극복의 과정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안부 인사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본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점점 비대면화되는 사회에서 꼭 콜포비아는 누군가가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문제로만 여겨져야 하겠냐는 부분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따라 우리의 대화하는 형태는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서 가게에 전화를 직접 걸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배달 앱에서 손가락으로 몇 번 움직이기만 하면 부수적인 행위 없이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무언가를 극복하려고 하는 모습은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모습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 이상적인 사회의 기조와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극복하려는 모습은 오히려 모순점을 자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문헌] 1. 통화가 두려운 불안장애, 당신도 ‘콜 포비아’ 인가요?/ 서울성모병원 블로그, https://naver.me/5mr5K68T, 21년 06월 04일. 2. 코로나 종식, Z세대에 남긴 불편한 유산 '콜포비아' 극복법은? [이슈 산책],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601446635607936&mediaCodeNo=257&OutLnkChk=Y, 23년 05월 11일. 3. 전화벨 울리면 가슴 쿵쾅쿵쾅, 신종 유행병을 아십니까, 조선일보, 최인준 기자,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5/13/PVVU3IFBCRGM3BY3XTBGJU6ZIE/, 23년 05월 14일. 4. “전화벨이 울리면 두려워요”...젊은층 통화에 대한 부담감 느끼는 ‘콜 포비아’ 현상 나타나, 시빅뉴스, 윤유정 기자,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96, 23년 04월 19일. 5. ‘콜포비아’에 떠는 MZ세대… “학원서 대면 스피치 배워요”, 동아일보, 이소연 기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203/117729151/1, 23년 02월 04일.
제 5 호 이태준의 수연산방에서
정기자 임지혁 201710846@sangmyung.kr 성북에 가면 수연산방이라는 곳이 있다. 학교에서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지만 직접 이어진 대중교통편이 없으니 자차 또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어렵다면 시간이 넉넉한 휴일이나 방학 때 방문하기를 권한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이라서 이전에 소개했던 길상사와도 가는 길이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수연산방과 길상사는 언덕의 골목길에서 걸어서 서로 15분의 거리에 위치하므로 역전에서 버스를 탈 때에 어떤 버스를 탈 것인지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1111번 버스를 탄다면 수연산방으로, 성북02번을 타면 길상사로 향한다. 하지만 설령 버스를 잘못 탔다고 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두 곳 모두 멋진 장소이므로 어느 쪽으로 향하던 그 기억은 따스하게 남을 것이다. 다만 작년에 길상사에 대해서는 얕게나마 다룬 바 있으므로 이번에는 더 언급하지 않겠고, 오늘은 새롭게 수연산방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학부의 마지막, 졸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있는 기자가 한량한량 찻집이나 노다니는 것이 합당하느냐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마는 우리 자하 교지는 세상의 만사를 다루는 곳이다. 그런 교지의 생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날 좋은 때에 펜 한 자루 들고서는 세상 오만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9월의 첫날에 찾아간 수연산방은 일종의 전통 찻집이며 풍경이 좋은 한옥 양식의 건물에 앉아서 대추차 등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풍경이 좋고 차가 맛나다고,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간 것은 아니다. 근처에 많이 있는 왕돈까스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만 갔던 것도 아니다. 이곳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께서 1933년~1946년까지 기거하시며 작품을 집필하시던 유서 깊은 곳이다. 코로나 이후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로 우선 병원에 들르고선 곧바로 성북동으로 향했다. 1111번 버스에 앉아서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아뿔싸, 영업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다. 매주 월, 화요일에는 쉬고 11시 30분에 문을 열어 평일에는 18시, 주말에는 23시에 문을 닫는다. 오늘은 금요일이므로 18시까지 하지만 지금은 이미 17시로 마지막으로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난 참이었다. 결국 다음번에 다시 오는 것으로, 그 후기만큼은 교지의 인스타그램에 클립 뉴스로나마 게시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하면서 근처의 저녁거리 맛집을 찾아서 나섰다. 실은 선생께서 직접 당신의 자택에 찻집을 여신 것은 아니다. 찻집은 1999년 선생의 외종손녀가 당호를 내놓고 영업을 시작한 것이고, 원래의 당주였던 선생께서는 북으로 가셨다. 1946년의 일이다. 그 후로 반공을 내세운 과거 정부들이 월북했던 선생의 존재와 작품들을 금기시하다가 1988년에야 선생의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해금되며 ‘상허학회’ 등에 의해 연구와 출판이 진행된다. 이태준 선생을 알게된 것은 어느 글 하나 때문이었다. ‘만년필’이라는 단편 수필, 이전에도 구인회(九人會), 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1]와 같은 근대 문학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당신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글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질, 한낱 조그만 한 물형에 일종의 애정을 폭로함은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임엔 감출 필요야 없는 것이다. 나는 만년필을 퍽 사랑한다. (...) 나는 다른 방면엔 박하더라도 만년필에만은 제법 흥청거렸다. 만년필(1934) 학등(學燈) 5월호에 게시된 글의 내용은 조선에서 굉장히 희귀했을 미국 보스턴제 ‘무아’ 만년필을 잃어버린 일을 담고 있다.[2] 요즘에는 쓰는 사람이 많이 없다지만 필자는 그 즈음에 홍대 일대에서 만년필을 한 자루를 잃어버린 적이 있기에 그 굉장히 안타까운 심정을 공감하면서 글을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짧은 글 안에서도 돋보이는 유쾌하면서도 읽기 쉬운 특유의 문체와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으므로 이태준 선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곧이어서 찾아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이야기하겠지만 그다지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얕은 지식으로나마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선생의 책은 ‘문장강화’다. 1946년에 수연산방에 계시던 적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이면서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적이면서도 굉장히 잘 읽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 책을 비롯한 실용 서적은 그 효용을 중시하는 이유로 굉장히 딱딱한 내용으로 구성하거나, 아니면 그 딱딱함을 조금 완화하고자 약간의 별개의 일화를 곁들이는 식으로 책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문장강화에서는 철저하게 글쓰기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문체가 어우러지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글쓰기 교재가 아니라 소설 한 권을 읽고 있는 듯한 감상이 들게 된다. 여기에 정지용 등, 당대에 이태준과 친밀하거나 유명한 작가들의 글에 대한 비평 아닌 비평까지 곁들어지면서 근대문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읽기에 더더욱 재미있어진다. 필자가 자하의 편집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당당히 신입 기자 교육 자료로서 선정하였는데 부디 누군가 한 번쯤은 읽었으면 싶은 바람이 있다. 이태준 선생은 철원 출신이다. 철원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일제시대에는 경원선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강원도에서도 손꼽히게 큰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시기에 남북 모두 철원의 지리적 중요성을 알았으므로 그곳에서 사투를 벌였고, 결국 철원은 휴전선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선생의 생가는 휴전선 이남에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그 흔적을 향해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태준 선생의 일생을 온전히 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원에 있는, 생가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와 2024년에야 완공될 문학관, 서울 성북의 수연산방 정도만이 한반도에 남은 당신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책은 잘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 이름에 김유정 선생의 이름을 붙이고, 특히 박경리 선생은 삶의 족적을 따라서 문학관을 세울 정도로 문학에 우호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굉장히 초라한 대접이다. 남과 북은 문학적인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생을 버렸다. 그 흔적마저 지웠다. 남은 선생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1946년 선생께서는 평양 조소문학협회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출발해 소련을 여행하면서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 아르메니아 등지를 방문하였고 그 소감을 정리한 ‘소련기행’을 발표한다. 설령 그 글들을 읽지 않았더라도 위의 행적을 듣는다면 선생이 무엇을 보았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 최대의 공방전이 있었던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 그 참상 속에서 무사했던 수도 모스크바, 그리고서 펼쳐진 공업지대. 이러한 풍경이 조선의 한 문학가를 공산주의에 경도시켰던 것 같다. 혹자는 그 글을 두고 “과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했다고도 이야기한다. 당대 소련공산당 내에서도 반발이 컸던 당시 스탈린 체계의 모순에 대한 통찰이나 지적이 전혀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어쨌든 그 글을 통하여서, 선생의 시각으로 볼 적에 그 당시의 상황, 그러니까 남조선로동당이 붕괴되고 1948년에 들어서야 북한보다 2년 뒤늦게 토지개혁을 실시한 남한의 정치적 상황이 선생의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은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지 않은 선생은 전쟁이 끝나고서 월북작가로 분류되어 문학사에서 사라진다. 그나마 1988년에 선생의 이야기들을 해금시켰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고향 자락에 문학관을 하나 짓고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일 것이다. 북은 더욱 악랄했다고 평가해야만 하겠다. KAPF나 소련문학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실주의 창작이 강조되어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문학계 내적인 상황도 있었으나 그보다도 외적인 영향이 압도적으로 컸다. 김일성을 필두로 한 빨치산파(혹은 만주파)는 남조선로동당계의 남로당파, 고려인계의 소련파, 중국공산당계의 연안파를 숙청하며 초기 북한의 집단지도체계를 붕괴시켰고,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온전히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체계로 나아가게 된다. 북조선예술문학예술총연맹에서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던, 그리고 빨치산파와는 거리가 있었던 선생도 그 시기에 숙청되어 동쪽의 어느 오지로 가게 되었고 정권은 선생의 존재와 행적을 지웠다. 지금까지도 북한 정권은 선생을 복권하지 않았으므로 말년의 행적은 온전히 문학계 탈북자들이 전해준 입소문뿐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구인회 일원이자 친구였던 정지용이 충고한 바와 같이 조국의 서울로 돌아왔으면 좋았을까.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인회 구성원의 상당수는 월북하였고, 서울에 남은 정지용은 그 유명한 보도연맹에 가입한다. 그 시절의 많은 사람이 새로운 민국에서 더 나은 것을 꿈꾸었지만 두 권력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을 지웠고,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들과 그로 인한 선택지의 결말은 온전히 개인의 파멸로서 남게 되었다. 남과 북의 대립은 겉으로나마 사상대립이었지만 실상은 그보다 못한, 수준 이하의 고집과 욕심, 그리고 포용이나 공감의 부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지금도 진행 와중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생께서 도심의 한가로운 곳에서 찻집을 운영하시는 세상을 상상한다. 한국의 문학계에는 ‘69’ 다방으로 유명한 이상의 다방 경영 수난사가 유명하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번창하지 않았을까. 선생의 글을 읽을 때면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들면서 작품의 유쾌함과는 달리 선생의 이야기가 슬프게 마무리되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안타깝다. 만년필을 잃어버리는 때의 그 슬픔, 그보다도 한 시대에 대한 절대적인 유감. 이렇게 잡다하게 떠도는 생각들이 선생의 책을 많이 읽지도 못하고, 그저 한량한량 오늘처럼 그 자취를 떠돌고만 있는 이유라고 변명한다. [1] 에스페란토어로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등 일부 자료에서는 Federatio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으나 본문에서는 사전적으로 옳은 Federacio로 표기하였습니다. [2] 무어(Moore)는 1899년에 설립된 미국의 만년필 회사로서 당시에 양질의 필기구를 생산하던 유명한 기업이다 [ 참고 문헌 ] 1. 권성우. (2005). 이태준 기행문 연구. 상허학보, 14, 187-222. 2. 장영우. (2009). 그들의 문학과 생애 - 이태준. 한길사. 3. 이태준. (2003). 이태준 -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04. 돌베개. 4. 윤홍로. (2023-08-31 접속).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5. 신동욱. (2023-08-31 접속). 이태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 5 호 사유(思惟)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 당신은 사유하는 사람인가? 단순히 문해력의 문제를 뛰어넘어, 최근 들어 활자 자체를 읽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긴 글은 읽지 않은 채, 단편적인 내용만을 보여주는 것들만 선호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글이 길어지는 듯하면 화면을 돌려 다른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애초부터 활자 자체를 읽지 않으니, 어쩌면 문해력을 걱정하는 것은 조금 앞선 우려가 되어버렸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유해야만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 사(思) 생각할 유(惟).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유(思惟)란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자 철학의 개념으로 본다면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사유의 의미를 매우 넓게 규정한다. 그의 의미에 따르면 사유란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의욕하고, 의욕하지 않으며,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 의욕은 통상 의지의 능력으로 사유와 구별되는 것이지만 데카르트는 의지와 사유를 크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의지의 자유와 사유의 자유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된 것은 그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상상하는 힘,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이는 현존하는 것이며, 사유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감각된 것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각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으며, 이것은 사유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문제 해결, 결정 과정, 논쟁, 논리적인 주장 등을 모두 사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개인과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사유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유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에 인간관계를 향상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 삶에 적용하는 것까지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한 정답은 ‘독서’에 있다. 함께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그러나 요즘 들어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독서를 멀리하고, 올바른 사유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 통계청(KOSIS)의 2009년도부터 2021년도의 평균 독서 권수를 비교해 보면, 해마다 평균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도를 확인해 보면 거의 두 달에 한 권 책을 읽는다는 의미이다. 독서 말고도 할 수 있는 취미나 매체 활동이 다양해진 시대인 만큼 독서보다는 더욱 자신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자신이 꾸며둔 각자의 일과와 학업에 치여 독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하며, 활자 자체를 읽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기피하는 현상 또한 독서량 감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매체는 결코 책을 이길 수 없다: 매체의 흠 영상매체는 책과 달리 사유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내용을 흡수하고 저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적당한 쉼표와 마침표의 조화가 있어야 하는데, 영상매체는 우리에게 그러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영상 자체의 속도에도 쉼표가 없을뿐더러 우리의 머릿속 또한 우리가 사유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이나 화면뿐만 아니라 소리와 자막, 화면이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차지해 다른 생각으로 뻗어 나갈 시청각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어찌 보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를 쉽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함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사유하지 않는 만큼 머리를 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정보 그대로 흡수하면 되기에 가성비가 좋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전, 휴대전화에서 틀어져 나오는 릴스와 숏츠들을 잔뜩 보고 잠이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아침에 일어나 그것들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었는가. 그저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 그 영상 웃겼는데 ...’ 정도로 끝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자신의 시선으로 쉼표를 찾아 읽으며 사유를 한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영상매체는 너무나 쉽게 다가와 이를 가공할 시간도, 내 것으로 완전히 흡수할 시간조차 부족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지 않는다. 영상매체는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과 같다고 느껴진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만 가져와 MSG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영상을 찾도록 한다. 너무나 광범위한 내용을 요약하고 함축하고 있기에 고작 1분 남짓한 영상이 그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매체는 결코 책을 이길 수 없다: 가득한 책의 매력 반면에 책은 영상매체와 달리, 음향도 이미지도, 빠르게 넘어가는 장면 전환도 없다. 간혹 있는 그림과 사진에 빼곡히 적힌 글씨가 전부이다. 그러나 영상매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앞서 말한 쉼표와 마침표이다. 이는 우리에게 하얀 여백의 공간으로 다가와 우리의 속도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저 우리는 자신의 들숨 날숨에 맞춰 글을 자연스레 흡수하면 된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있는 띄어쓰기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자간과 행간의 조화는 우리에게 사유할 시간을 제공한다. 책은 영상매체처럼 시청각적 효과가 없을뿐더러 짧은 시간 내에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한 권을 온전히 다 읽어야만 나만의 생각을 구체화하여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가를 돌아다니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책 한 권을 고르고, 다양한 책들의 제목을 보면서 혼자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는 시간도 물론 사유를 하는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대가 아무리 지나고, 사회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독서’를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기술과 함께 변화해 가는 사회 속 독서는 우리의 감성을 아날로그로 만들어 혼자만의 오랜 시간을 갖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사유를 하게 만드는 독서의 매력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영상매체와 전자기기의 등장으로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독서량이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전자책 등으로 책을 읽는 사람 또한 존재하겠지만 전자책 또한 하나의 매체라고 보았을 때,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는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전자책을 이용해 독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자책은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는 점과 무겁지 않아 종이책보다 접근성이 훨씬 뛰어나고, 싼값에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어 좋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책 한 권 정도 되는 값을 매달 지불하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손의 감촉, 종이책 특유의 향기까지, 종이책은 오감으로 그 자체를 향유할 수 있게 한다. 책을 읽는 그 순간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장을 한 권씩 채울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자책과는 달리 눈이 피로하지 않고 필기가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책 또한 하나의 매체로 본다면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아날로그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는 감성을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예 독서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독서하는 것이 낫겠지만 말이다. 책 향기가 가득한 세상이 온다면 작년 겨울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중, 남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빛나 보였고 멋있어 보였던 기억이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렇게 시간을 쪼개서 틈틈이 독서할 수도 있구나. 어쩌면 내가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했다고 한 것은 모두 핑계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되도록 가방에 한 권씩 책을 꼭 넣어 다니려 하고, 조금이라도 대중교통을 길게 이용할 때가 오면 그 책을 꺼내 가끔 읽곤 한다. 내가 그러한 선한 영향력을 받은 것처럼 누군가도 나로 인해 그러한 영향을 받았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람도 담은 채 말이다. 앞으로 발전할 우리의 세상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올바른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이에 대해 적절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답을 하는 것은 이미 챗지피티와 같은 인공지능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필요한 질문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인공지능이 답한 것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그렇게 수정한 마땅한 근거까지 자기 생각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를 해야 하고, 사유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해야만 한다. 독서의 방법이 무엇이든, 책 한 권쯤은 가방 속에 넣어 다니며 어디서든 꺼내 읽는 멋진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무더운 여름 서점으로 북캉스를 떠나 우리 함께 책 향기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가 보자. [ 참고 문헌 ] 1. 사유[cogitation, thought, 思惟],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23.07.31.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1978&categoryId=41982 2. 통계청, 1인당 평균독서권수, 2023.08.01.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SSCL020R&checkFlag=N 3. 안지윤, 위기의 종이책, 종이책의 매력은?, 한국연예스포츠신문, 2023.08.01. http://www.korea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9917 4. 메인사진_세월의 때 묻은 고서가... 역사처럼 ... 쌓여있는 곳...'대오서점' Ⓒ한국경제
제 5 호 외로움에 잠수하기
수습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어느새 사라진 그 청년> "면바지 한 벌, 청바지 한 벌, 정장 수트 한 벌 이렇게 있는 거니까 그래도 아직 30대면 대인관계를 많이 할 나이잖아요. 그런 거에 비해서 너무(옷이) 없는 편이긴 하죠. 이 현장 같은 경우는 제가 본 현장들 중에서는 나이대별로 따졌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는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독사 현장을 치우는 전문가가 방을 치우며 말한다. 과연 무엇이 이 청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림 1 출처 KOSIS (통계청, 인구총조사)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1인 가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고, 2022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했다. 2047년에는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20대에서 30대 청년 1인 가구는 약 5백만 가구였다. 2021년에는 2015년에 비해 약 2백만 가구 증가한 7백만 가구였다. 위의 표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25~29세의 청년들이 가장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30~34세가 그 뒤를 잇는다. 청년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서 청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관심을 받는 분야는 노년층과 중장년층의 고독사지만, 청년층의 고독사도 절대 적지 않다. 1인 가구와 함께 증가하는 것이다. 2022년 보건복지부의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2021년 20~30대 청년층의 고독사 비율은 6.3~8.4%로 나타났다. 청년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사회에서 고립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홀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그 청년은 왜 사라졌을까?> 여기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불이익이 있을까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도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못하고 고립되었고, 곧 사라졌다. 주변인들은 그가 참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따스하지 않았다.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 치료는 받을 수 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신청하지 않으면 치료받지 못해서 일자리를 잃는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 또 다른 청년이 있다. 몇 년 전 서울 소재의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는 단 1점 차로 시험에서 떨어졌고, 날마다 공부하며 보내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끼니는 음료로 때우고 외출도 잘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있었지만, 혼자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연락은 거의 끊은 상태이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 작년 시험에서 떨어지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유서를 쓰는 자신을 발견하고 약까지 먹고 있다. 청년 고독사를 발견하는 이들은 주로 집주인이나 채권자이다. 받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성인인 동시에 미성숙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간다. 그 경쟁 속에서 외로워지기 쉽고 고립이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외로움과 고립이 심해진다면 오늘 내 옆에 있던 누군가도 사라질지 모른다. 흔히 청춘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시기라고 말한다. 현재 수많은 청년이 안전장치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 청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이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노인 인구가 많은 만큼 노인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가장 중점적인 활동은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기 위한 소통이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안부 인사를 전하는 등의 아주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활동이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고독사의 시발점인 고립, 고독,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다. 이외에, 미국에서는 은퇴자 중심의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을 영국은 지자체별 노인클럽 활성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4월 1일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제정했다. 각 지역의 복지관에서도 지역사회통합 프로그램, 1인 가구 발굴 사업 등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끼리 동아리를 만들고 복지관에서 모여서 활동하거나, 봉사자들과 복지사들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묻는 것이 그러한 예시이다. 종로구에서는 2021년 6월부터 이웃 찾기 체크리스트를 배포하기도 했다. 종로구 창신2동에서는 ‘이웃을 살피는 똑똑 안녕하세요! 복지통장입니다’, ‘함께하는 삶, 나누는 쌈’ 등의 안부 확인, 쌈 채소 전달과 같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상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년층과 중장년층을 대한 사업에 치중되어 있다. 청년층은 20대의 경우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는 경우가 많고, 노동 시장에 있는 이들이 많다. 또 비교적 몸이 건강한 경우가 많아 복지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없다. 하지만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은 한둘이 아니다. 청년을 위해서는 어떤 사업이 필요할까? 서울시는 지난 4월 고립·은둔 청년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발굴부터 사회복귀까지 기존보다 촘촘한 발굴체계를 구축하고, 개인에 맞는 지원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립과 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응원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2025년부터 지역단위 대응 진행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역별 청년 지원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각 지자체는 각 지역 상황에 맞는 안전망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자원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한다. 한정된 자원과 사각지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옆집 사는 사람은 괜찮을까? 내 친구, 동기, 가족은 혼자 있는 동안 외롭지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이 고독사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는 과거보다 개인주의가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범죄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문을 두드리지 못하겠다면 복지관이나 경찰서에 전화 한 통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방 안에서 해를 피하고 외로움에서 숨을 참고 있을지 모른다.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주 작은 오지랖으로 그들을 외로움에서 꺼내줄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오지랖이 누군가를 살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달, 이번 주, 오늘이라도 주변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 참고 문헌 ] 1. KBS시사직격 . (2021.5.7.l) . [72회full]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 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 | #시사직격 KBS 210507 방송[비디오] .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live/rzRGLpkIjvI?feature=share 2. 이관형. (2022년 12월 14일).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최근 5년(17년~21년) 고독사 발생현황 등 최초 조사 실시-. 보건복지부. https://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CONT_SEQ=374084 3. 이익돈. (2021년 6월 9일). 종로구, 고독사 예방 캠페인 ‘함께 사는 세상’ 펼쳐. 경인매일. https://www.k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792 4. 이진아. (2013). 일본의 경험을 통해서 본 고독사 예방과 대책에 관한 탐색. 지역과 세계, 37(3), 63-86. https://www.seoul.go.kr/seoul/mediahub_view.do?articleNo=200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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