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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1980년대] 빛바랜 80년도 교지의 빛

  • 작성일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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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8149
이선우

오지윤 정기자


1.1980 년대 자하와의 조우

 

 한자로 시작된 표지에서부터, 세월에 변색된 종이는 80년대 교지가 나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역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30 년도 더 된 

교지를 펼쳐 보면 그 당시 선배들의 정신과 한국의 역사적 이슈가 상명인의 관점에서 담겨있다. 이 중에서 80년대 교지는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시기에 쓰인 만큼 인상적인 글들이 많다. 전체적으로 이 시대의 교지는 자하 교지 편집부의 선배들이 직접 창작 한 시, 소설, 수필, 평론 등과 같은 문학 작품이 "자하 문단"안에 기록돼 있다. 그만큼 그 시대의 많은 젊은 청년들이 미래의 문학도를 꿈꾸고, 문학에 대한 열정이 많았다는 걸 알 수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주제도 자주 등장한다. 1965년 개교 당시 '상명 여자 사범 대학'으로 시작하여 1996 년에 비로소 현재 남녀 공학인 상명대학교로 바뀌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여성에 대한 관심과 고찰이 이해되었다. 그 다음으로 주목해보아야 하는 주제는 그 당시 한국의 정치적 사건의 중심에 있던 청년들과 경제발전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지성인으로서의 대학생다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교수님의 서평과 대학생들의 고민을 담은 다양한 주제가 담긴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이 기대되는 탄탄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2. 제 13 호 (1981 년)

 

 먼저 1981년도 교지는 이 기사에서 다룰 교지 중에 가장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꽃을 메카로 세련된 표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포토에세이에 서부터 취재 기사, 한국의 예술, 한국의 종교, 그리고 자하 문단까지 인문학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내용을 담고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부업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취재한 기사인 "대학생 부업의 현상과 문제점"이었다. 현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하는 것처럼 이들도 부업을 했었는데, 직종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현 대학생들은 학원이나 과외, 편의점 등과 같은 일을 한다면, 당시에는 대학생 사이에서 과외 금지 조처로 인해 학습지와 같은 시험 문제지의 수요가 늘어나 학습지 배달과 같은 일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밖에도 보험 가입 확장 요원과 같은 영업직, 무역 회사원, 인구 시장 조사 요원, 외국 구매자를 위한 연주 서비스 요원, 개인 회사 사장 비서, 그리고 미대생의 경우 의류 디자이너와 같이 현재 대다수의 대학생이 졸업 한 후 뛰어 든 취업전선에서 비로소 경험할만한 일을 이미 하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도 견디기 힘들 수 있는 일들을 이 당시 대학생들은 부업으로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 정치적 사건이 우리에게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생활에 와 닿는 변화라는 것을 느꼈다.


3. 제 14 호, 16 호 (1982 년, 1984 년)


 1982년도의 교지는 "현대 여성의 가능성"과 "한국교육"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로 이루어져 잇다.  그중에서도 진로에 대한 내용을 다룬 "현대 여성의 가능성" 부분이 인상 깊었으며 당시 사회에 나가 있던 선배들의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필요한 역량과 같은 조건들을 취재한 기사와 교수님들의 서평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과거 본 대학이 사범대학이었던 만큼 교직으로 진출한 선배들이 많았고, 그 직업군으로는 교사, 교수, 사서, 비서, PD, 영양사, 연구원, 출판사 직원, 공무원, 화실경영 등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꿈꾸는 직업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문학이다. 교지 안의 기억에 남는 문학 작품 중에 1984년도 교지 안에 수록된 시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세검정"이라는 제목의, 당시 국어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선배님이 쓰신 시다. 


세검정

                       민영흥/국어과 3학년


1

곳곳에는 가슴 허물린 절벽

오르기 힘든 곳이 아니라

오르고도 즐거움을 거부하더니

어느 가지 치는 날

솎아진 잎사귀되어 메달리게 되었다. 


산등성이 목덜미를 

발등으로 찍어대는 

여린 살냄세 

피로한 날냄세들이, 그렇게

쉽사리 서로의 비림을 용서하지 못하여 


산동네 빗줄기는 더욱 굵고 

산동네 눈밭은 더욱 두꺼워

우리는 더욱 아프게 맞는다. 


2

되돌아 보면 

멀미가 나는 시간의 모서리에서 

뒤늦은 현기증은 

질펀한 세상을 토해내고 


차리리 고독한 공허이기를 

차라리 손시린 외면이기를 

하여묻어도 

사람은 말이 없고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이브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에도 

할미가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난 때에도 

비명 아니면 

눈물 아니면 

피라도 뿌리며 

꿈틀대고자 했던 것은 


3

우리들 돌팔매질 

봄가을 휘어돌아

샛길이 한길되더니

어느날

성황당 돌기둥이 보인다. 


천둥 번개가 하늘벽을 허물어 때리면 

용이다.


낡은 실밥

두툼한 가랭이에서 

아픔 다하도록 허물깎아 내더니 


그것은 

무에서의 새로운 모둠이 아닌

네 안에서의 깨달음이었다.  


 이 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이유는 매번 세검정을 지나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상명인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써 내려간 그 문학적 감성에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보고 몇 년 전 학교 축제에서 글짓기 대회를 열었을 때 입상했던 동문의 짧은 시가 떠올랐다. 


언덕


지각이야 

뛰고 싶니?

정신차려

"상명대"야


Frozen Duck


Frozen

Duck


 그 당시 '언덕'시가 1 등이었고, 'Frozen Duck'이 2 등을 수상했다. 둘 다 무릎을 탁 치게 하고 웃음 짓게 되는 글이다. 흥미로운 건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시들보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글이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는 사실이다. 현대는 이처럼 재밌고 쉽게 읽히는 문학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현시대의 유머와 예전 문학작품의 감성, 둘 다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4.17 호 -22 호 (1985 년 -1990 년)

 

 지금까지 문학과 여성, 다양한 주제의 서평을 다루었던 1981년부터 1984년도 교지까지 살펴 보았다면 이와 반대로 1985년에서 1990년도 까지의 교지부터는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주제들이 주를 이루었다.

 문화로 본 한일 관계, 식민주의와 주체성 확립, 분단과 통일, 한국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내용이 다루어졌고, 이 중에서도 1987년도 교지에 실려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기사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다. 이 기사는 이 시기에 서구국가 제도가 한국에 들어오고, 독립 이후 맞닥뜨린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정부의 통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당시 경제성장의 상황이 쉽게 그려졌다. GNP 성장 중심의 개발전략으로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극심한 소득 불균형과 높은 외자 의존도 등과 같은 문제점이 남아있었다. 이 기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장기적인 경제정책과 경제 운용에 있어서 민간주도형으로의 변화, 인간 자본 축적에 관심을 돌려 경제자립을 하는 것을 꼽았다. 이후 실제로 이루어진 해결법들이기에 저자의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의미 있는 기사였다. 


5.소감


 이 당시 교지들에 특징 중에 신기했던 것은 교지편집부원들의 글보다는 교수님, 다른 대학교 학생,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투고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우리 또한 투고를 받고 있지만, 이 시대 교지에서 받은 만큼의 많은 투고는 받지 않는다. 이것은 교수신문사 기자 캠프에서 만난 타 대학교의 교지 편집부원들에게  들어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현재 대학교의 교지편집부는 문학과 수필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조금 더 실용적이고 정보를 포함하는 글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종이책이 아닌 웹진으로, 매체도 변하고 있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현재 추세와 과거 모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사를 쓰며 이를 확실히 느꼈다.  

 또한 한 가지 더 느낀 점은이 당시 대학생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과 성장을 해왔다는,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들도 취업과 진로 문제로 치열한 청춘을 보내고,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구조적인 문제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1980년대의 대학생들은 지금의 기성세대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 혐오 문제 등과 같은 사안에서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갈등을 맺고있다. 이러한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우리는 같은 문제를 가진 공동체라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선 서로의 시대적 배경과 공유되는 문화, 당시 사회적 인식과 같은 맥락을 알려고 하고, 이에 기초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자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어느 순간 이어져왔던 마음속의 차별의 고리를 조금이나마 끊어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리고 서로 한 걸음 씩만 더, 열린 마음을 가지면 해결될 수 있는, 어쩌면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왜 제일 해결되기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러한 많은 고찰과 생각을 하게 해준 자하지만, 에너지도 많이 받았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시대에서, 당시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한 선배들의 글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기운이 느껴져 가슴이 벅찼다. 또한 상명대 학교 선배들의 노력이 있기에 지금의 교지 편집부가 있을 수 있었고,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약 30년이 지나 빛이 바랜 1980년대 자하 속의 빛나고 멋진 기사들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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